27일 국무회의에서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관계부처 국장간 수차례의 의견조율을 마치고 차관회의까지 통과한 법안이 장관들의 반발로 통과 보류된 것. 장관들간 의견이 맞지않아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95년 노동법개정안을 포함한 중소기업지원 특별법이후 처음이다.이날 안건은 기획예산위원회가 만들어 국무총리실을 통해 상정한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구조조정법. 국책연구소와 주무부처간의 소속관계를 해소해 사회과학계 2개, 과학기술계 3개등 모두 5개의 연합이사회체제로 운영하며 정원과 인사 예산등의 권한을 각 연구소장에게 맡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책연구소 독립은 사실 해묵은 과제다. 이 법을 만들기 위해 올 4월에 열렸던 공청회에서는 『수시로 떨어지는 주무부처의 과제로 장기적인 연구를 할 수 없다』 『부처 파견관을 없애 예속을 탈피해야 한다』 『부처의 의견과 어긋나는 보고서는 묵살된다』는 학계와 관련 연구기관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 박사 47명을 확보하고 있는 모 연구기관은 지난해 기본연구 26건, 부처가 내린 수시과제 227건을 수행했다. 대부분 박사들이 부처의 과제를 기다리느라 대기해야만 했다. 또 다른 연구기관은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해당 부처로부터 완전 묵살당했다. 연구기관들이 고유기능은 못하고 정책을 합리화하거나 공무원 업무를 대행하고 자리나 만드는 정도로 전락, 정부의 「싱크탱크」가 아니라 부처의 「수족탱크」로 자리해 있는 셈이다.
앞으로 이 법이 통과된다 해도 현 내각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설마」했던 치부들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여전한 부처이기주의와 권한행사 의욕, 특히 장관들의 개혁의지 실종이 분명해진 것이다. 개혁의지가 없는 장관이 길거리에 나앉은 수많은 국민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지금은 자기부처 이익이나 챙기는 장관보다는 몸을 던져 위기를 관리하는 장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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