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25일 청소년 창작가요제의 자리를 빌려 새 청소년헌장을 선포했다.「젊은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기로 한 것이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로 시작되는 새 헌장은 청소년에게 인권과 시민권을 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작업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우여곡절 끝에 나온 헌장을 다시 읽으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개정된 헌장을 읽어본 사람들 중에 헌장이 명문이 아니라는 점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새 헌장은 건조한 법조문같은 문체로 씌어졌다. 이유가 있다. 청소년인권이 심하게 억압된 상황인 만큼 헌장이 아니라 인권선언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개정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은 헌장이 「좋은 말만 늘어놓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90년에 제정된 헌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청소년은 새 시대의 주역이다. 뜨거운 정열을 가슴에 품고 자연과 학문을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굳게 뭉쳐 조국 발전의 일꾼이 되어 세계와 우주로 힘차게 나아가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이룩한다」. 박정희정권때 제정된 국민교육헌장과 매우 흡사한, 개발독재시대의 진수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개발독재시대는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하여 「동원」하기 좋은 군중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래서 소리내어 읽는 「명문」이 필요했다. 개정된 헌장은 그런 면에서 문체를 통해 국민교육헌장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린다.
새 헌장은 국민들에게 차분해질 것을 권하고 있다. 10대들이 살아갈 세상은 진보를 약속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암울함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 할 「젊은 국민」들에게 부모들의 삶의 논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질리 없다. 살인적인 속도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세대간 대화는 단절상태이며, 실업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헌장 개정 공청회에서 청소년들이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조항이 「청소년은 일할 권리와 직업을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였던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청소년들이 너무 많은 권리를 가졌다고 한 어른의 말에 한 번도 선택을 해본 적이 없는데 웬 책임이냐고 청소년은 반문했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에서는 실제로 어떤 제도적 보장이 될 것인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문화향유권과 사적 권리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새삼스럽게 청소년의 인권을 주장한 것은 소외된 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지만 그보다도 붕괴된 의사소통체계를 다시 일으키고 우리나라가 앞으로 제대로 된 국가공동체로 살아남기 위해 절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한 여가시간을 달라든가, 일기를 훔쳐보지 말라든가, 두발자율화를 하자는등의 요구를 그냥 자기 마음대로 간섭받지 않고 살고 싶다는 표현으로 보지 않는다. 자기를 표현하고 성숙시키려는 욕망, 방해없는 공간에서 보다 질 높은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경직되고 늙어가는 후기산업사회는 생기를 되찾고 재활력화할 수 있고,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위기상황일수록 「젊은 국민」들의 창의력이 필요하다.
이제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겠다.「어른중심주의」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비틀린 「청소년중심주의」가 나오게 됐다. 청소년을 보면서 『버르장머리 없다』고 말하기 전에, 기성세대를 보며 『밥맛 없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 모두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연습을 시작하자.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틀을 넘어서는 지혜로운 어른들과 스스로 삶을 책임질 청소년들의 만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연세대 교수>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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