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트베긴/79년 평화 ‘물꼬’/93년 팔 자치합의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상은 언제 폭발할 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험난한 과정이었다.
중동분쟁은 20∼30년대에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이주해오면서 토착아랍인(팔레스타인)들과 갈등이 격화하면서 비롯됐다. 48∼74년 4차례의 중동전을 치렀던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은 79년 지미 카터 미대통령의 중재로 사다트 이집트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총리 간에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체결,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다른 아랍국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도 시리아로부터 빼앗아 점령하고 있던 골란고원에 대한 법적·정치적 권리를 천명해 불화가 심화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세계 곳곳에서 대이스라엘 테러를 전개하고 이스라엘도 82년 레바논 PLO 본부를 습격하는 등 60년대 이후 「피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80년대말 동구권 몰락으로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이스라엘과 PLO는 93년 9월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평화협정을 체결, 팔레스타인 자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팔레스타인에 강경입장을 고수하는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가 동예루살렘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자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측도 과격 회교단체들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테러를 잇따라 감행, 협상은 위기국면에 다시 빠졌다.<김혁 기자>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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