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는 20일(현지시간) 지리한 협상 끝에 행정부와 합의한 99회계연도 예산법안을 통과시켰다. 105회 의회의 폐회시한인 지난 9일을 넘기면서 밀고당기기를 계속한 협상에서 주요 안건 중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분담금 180억 달러의 지출문제였다. 연이은 금융위기 속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지난 봄부터 끌어 온 IMF 분담금 지출은 결국 「IMF의 개혁」을 조건으로 통과됐다.이미 알려진대로 의회가 요구한 IMF 개혁안 중에는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특별조항이 붙어있다. 「IMF의 자금이 한국의 반도체 철강 자동차 조선 섬유 등 산업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IMF의 개혁안과도 거리가 멀고 또 한국 정부와 IMF의 합의사항이 이미 이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실효성은 거의 없다.
미 의회가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조항을 붙인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미국의 몇 개 안되는 반도체 제조업체인 마이크로 테크놀로지의 로비 때문이다. 이 회사 회장인 스티브 애플톤은 지난해 12월 IMF가 한국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워싱턴으로 달려왔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엄청난 생산력을 갖춘 한국의 반도체 업체에 대해 이번에는 IMF가 지원하고 있다』며 가는 곳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기에 빠진 아시아 국가에 대한 IMF의 구제금융이 합당한 해결책이냐의 논쟁이 한창이던 그때 애플톤의 주장은 반대론의 한 논리가 되었다. 여기에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자동차 철강등 업계가 맞장구를 치면서 의원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한국에 대해서만 「특별대우」를 해준 것에 우리는 기분이 나쁘지만 한번 뒤집어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미 의회는 정말 「할 일」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거꾸로 우리 기업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발생했을 때 과연 우리 국회는 팔을 걷고 나서줄 수 있을까? 정치가 제 할 일을 못하면 국민만 서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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