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거리에 자동차 경적소리가 거의 없어졌다. 엔진과 바퀴가 구르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사람의 귀를 찢을 듯한 경적음은 언제부터인지 들리지 않는다.앞차가 늦게가도 「빵빵」, 정체가 되어도 「빵빵」, 보행인이 어물쩍거려도 「빵빵」, 끼여들지 못하게 「빵빵」불과 몇년전만 해도 하루종일 시내가 자동차 경적음으로 가득찼던 서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소 정체가 일어나도 운전자들은 경적을 좀처럼 울리지 않고 잘 참는다.■곰곰이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10년전쯤 만해도 경적음은 좀처럼 고쳐질 것같지 않던 고질병의 하나로 치부되었다. 다른 교통질서야 처벌이 무서워서 지켜진다고 하지만, 경적음은 시민의 집단적 자각이 없이는 사라질 수 없었던 공해였다. 내가 만드는 경적음이 내 앞에 당면한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남이 내는 경적음이 나를 얼마나 짜증스럽게 하는 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자각이 집단화한 것이 신기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거리에서 경적음을 없앤 서울시민의 집단적 자각은 우리 국민성의 큰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불편한 것은 고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나가며 상충된 이해는 타협점을 찾아 공통의 이익을 추구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인 것만 같다. 우리 사회의 흐름을 잘 관찰해본다면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데 기폭제로 활용할 수 있는 집단적 자각의 싹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어쩌면 따를 국민은 준비되어 있는데, 앞장설 지도자들이 헤매는 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사회는 완전히 자신을 잃은 채 창밖만 쳐다보는 꼴이다. 미국사람들이 좀 투자를 안해주나, S&P가 점수를 얼마나 주나하고. 그러다 보니 심지어 박세리와 박찬호의 승전보를 스포츠 이벤트 이상의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승리하면 기쁘지만 그들을 보고 세계가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 거리의 경적음을 없앤 것처럼 집단적 자각으로 우리의 내부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세상은 우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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