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쯤 뉴욕 월스트리트의 화두는 「돈 잔치」 였다. 9월30일 회계연도를 마감하는 각 증권·투자사, 금융기관마다 기록적인 흑자를 올리며 넘쳐나는 돈으로 흥청거렸기 때문. 실적급인 연말 보너스도 당연히 사상 최고 규모에 달해 신문마다 「월스트리트에 돈 벼락이 쏟아졌다」고 떠들었다. 당시 한국의 깊어가는 환란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기자에게는 부러움보다 『그 돈이 누구 돈인데…』라는 분노가 앞섰던 풍경이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투자철학을 갖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에게는 악화하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찬스」로 비쳐지고 있었다.그로부터 꼭 1년 만인 지금.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금융기관마다 부진한 사업실적을 보고하고 증시도 가라앉아 거리를 촉촉히 적시는 가을비 속에 더욱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올해는 보너스 얘기도 쏙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라는 자조섞인 말들이 들리고 일부 회사는 지급을 늦추고 있다.
그러나 얄팍해진 봉투쯤은 이제 문제도 아니다. 경영난에 휩싸인 금융기관마다 감원의 찬 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특히 한때 「황금알을 낳던」 이머징 마켓(신흥시장) 담당자들이 주대상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메릴 린치, 살로먼 스미스 바니, 배어링 ING, 뱅커스 트러스트 등 굴지의 금융기관들도 인원의 5%선인 1,000명정도씩을 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8년째 호황을 연속 누려왔던 월스트리트로서는 가히 「대학살」로 불릴 사건이다.
이같은 월스트리트의 침체는 자업자득적 측면이 강하다. 파산 위기에 빠진 대형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경우에서 극명히 드러난 판단 착오와 투자의 실패는 세계 유동자금을 지배해 온 이들의 자만이 부른 부실의 결과다. 월스트리트도 이제 세계 경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에서 유독 자신들만이 번영의 외딴 섬으로 남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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