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대통령 ‘과거史’ 직설적 언급/회담서 만찬까지 12시간 마라톤 일정/오부치 “난 친한파 소” 조크에 웃음꽃국빈방일 이틀째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8일 오전 숙소인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것을 시작으로 저녁에 총리주최 만찬에 참석하기까지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실무일정」을 소화했다.
■정상회담
양국 정상은 전날 천황주최 만찬을 화제로 잠시 환담한 뒤 우리측의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수석과 문봉주(文俸柱) 외교부 아·태국장, 일본측의 노보루 세이치로(登誠一郞) 외정심의실장과 아나미 코레시게(阿南惟茂) 아주국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곧바로 회담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회담에서 『양국 국민간의 감정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사 문제를 일단락지어야 한다』며 「과거사 극복」을 거듭 강조한 뒤 「북한의 인공위성발사문제」와 관련, 『일본 국민에게 준 충격을 이해하지만 과거 데탕트정책이 총 한 발 쏘지 않고 공산체제에 대해 위력을 발휘한 것을 거울 삼아 대북 포용정책은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부치 총리는 『갑작스러운 북한의 실험으로 아직 충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이해하나 일본 국민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니, 김대통령께서 설명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국회연설
김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회연설을 통해 「과거사문제」를 직설적으로 언급, 전날 천황 만찬에서 과거사 언급을 피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후 일본 참의원·중의원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 입장, 시종 열띤 어조로 25분동안 우리말 연설을 했다. 사이토 주로(齊藤十郞) 참의원의장의 소개로 연단에 선 김대통령은 『25년전 납치사건과 80년 사형선고를 받았던 내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일본 민주주의의 본산이자 역사의 현장인 일본 국회 의사당에 서게 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대통령은 이어 『한국과 아시아가 일본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일본이 과거를 인식하고 겸허하게 반성하는 결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일본의원들을 향해 과거 문제를 언급했다.
■공동회견
김대통령과 오부치총리는 「21세기 공동선언」 서명에 이어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회견은 일본 TV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예정시간을 20분 넘겨 45분동안 진행됐다. 이자리에서 김대통령은 모든 질문에 상세히 답변한 반면, 오부치총리는 주로 과거사 문제와 경제협력 분야에 치중했다.
오부치 총리는 공동선언에 포함된 일본의 한국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및 반성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양국 정상은 한 목소리로 과거 일본지도자들의 발언과는 달리 과거사문제가 문서화해 공식서명됐다는 데 의의를 부여했다.
■총리주최 만찬
김대통령 내외는 8일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전날 천황주최 만찬의 엄숙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이날 만찬은 오부치총리가 시종 조크를 던지고 폭소가 터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오부치총리는 『일본 신문은 나를 소와 같다고 한다』면서 『그러나 나는 귀수불심(鬼手佛心)을 가진 친한파(親韓派)소』라고 말해 웃음이 일었다.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오부치총리가 방한했을 때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휘호를 선물했다』면서 『이 글귀야 말로, 오부치총리의 신념과 인격을 정확히 나타내는 격언』이라고 화답했다.<도쿄=유승우 기자>도쿄=유승우>
◎NHK 좌담 출연/“납치사건때 日 국민관심 진심 감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8일 밤 NHK의 「클로즈업 현대」 좌담회에 출연, 일본 국민을 향한 우호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대통령은 사회자가 일본 방문의 소감을 묻자 『납치사건 당시,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일본 각계각층이 보여준 염려와 사랑에 늘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일본문화 개방방침에 대해서는 『정부가 여론에 따라야 할 때도 있지만 국민을 설득해야 할 때도 있다』며 『일본문화를 받아 들여도 결국은 한국문화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란 믿음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김대통령은 일본천황 방한실현시기를 묻는 질문에 『2002년 월드컵대회 이전에 실현되도록 지금부터 분위기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김대통령은 『정치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주저없이 『국민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자랑할 것이 없다. 원칙을 지키면 역사속에서는 늘 승자로 남는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햇볕정책 효과를 묻는 질문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사천리로 답변했다. 『북한내부에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다고 믿으며 근거도 있다. 온건파가 영향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미사일 문제는 일본과 미국, 한국이 긴밀히 협력해 더 이상 북한이 군사모험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인내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 김대통령은 한국의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연말이면 개혁의 틀이 잡히고 내년초에는 상당히 정상화할 것이다. 내년 후반기에는 한국경제가 정상궤도를 회복하리라고 본다』고 낙관론을 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日人 은사와 ‘59년만의 해후’
김대중 대통령은 8일 오후 숙소인 영빈관에서 59년전 목포상고 시절 은사였던 80세의 무쿠모토 이사부로(■本伊三郞)씨와 20여분간 반가운 해후를 했다.
무쿠모토씨는 김대통령 앞에서 『대통령각하께 실수할까 염려돼 미리 써왔다』며 A4 용지 한장에 쓴 글을 돋보기로 보며 읽었다.
그는 『국빈방문한 대통령각하를 영빈관에서 만나 생애 최고의 영예이자 기쁨』이라면서 『납치사건 등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불굴의 의지로 투쟁, 결국 최고의 영광을 쟁취한 것은 일찍이 내가 얘기한 정신을 문자 그대로 관철시킨 성과라고 생각, 자랑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납치사건 당시 재외공관에 근무하고 있었다』면서 『도울 방법을 궁리했으나 한국정부가 탄압하는 인물을 외교관 신분으로 도울 수 없었으며, 그 뒤 보낸 편지도 검열 때문에 전달되지 못한 것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대통령은 은사의 말을 경청하며, 무쿠모토씨의 가족상황 등 근황을 물은 뒤 문앞까지 배웅했다.<도쿄=유승우 기자>도쿄=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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