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언 나오기까지/우리정부 “시기상조” 거부/‘오와비’ 번역문제도 진통「한일 공동선언」이 채택되기까지 양국 정부는 발표 하루 전인 7일 아침까지 절충을 거듭하며 산고를 겪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일본 주요언론과의 회견 등을 통해 과거사를 매듭짓고, 전후 일본의 공적을 새롭게 평가하겠다는 의지를 비췄다. 하지만 일본측은 상당기간 우리측 진의를 파악하는 데 부심하며 암중모색했다. 김대통령은 4월초 런던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가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같은 뜻을 직접 전했으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일본 총리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중요하다』고 답하는 등 신경전도 벌어졌다.
방일을 앞두고 교섭이 본격화한 뒤 우리측은 과거사 문구에 대해 모든 것을 일본측에 위임하는 자세를 취했다. 지난달 29일 일본 총리실의 노보루 세이치로(登誠一郞) 외정심의실장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내한했을 때도 정부가 구체적인 입장을 전하지는 않았다. 이때문에 공동선언의 11개 항이 완성된 뒤에도 과거사 부분은 공란으로 남겨졌다.
끝까지 쟁점이 된 것은 「오와비」라는 일본어를 한국어로 「사죄」로 번역하느냐 여부였다. 일본측은 「謝罪(사죄)」라는 상용어가 있음에도 불구 이같은 표현을 쓰면서 우리측에 「사과」로 번역해 주도록 요구했다. 결국 번역문제는 김대통령이 일본에 도착한 7일 아침에야 「사죄」로 타결됐다.
또 하나 물밑으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대목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문제. 현재 유엔 회원국을 상대로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본은 이번 선언문에 「한국이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삽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 외무장관은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한일외무장관회담때 홍순영(洪淳瑛) 외교통상장관에게 집요하게 이 문제를 제기했으며 실무교섭과정에서도 「별도의 경제적 지원」을 내세우며 내용삽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민정서상 일본의 상임이사국진출이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따라 이를 거부, 결국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기여와 역할을 평가하고 금후 일본의 그와 같은 기여와 역할이 증대되는 데 대한 기대를 표명하였다」는 표현으로 낙착됐다.<도쿄=유승우 기자>도쿄=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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