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경기침체는 과연 언제 끝나나. 내년에는 경기가 회복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99년을 기다리고 있다. 98년은 이미 버린 카드다. 국내외의 여러 경제예측기관들이 이같은 여론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내년도 경제전망보고서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결과는 각양각색이다. 올해 보다 약간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과 올해와 다를게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반반이다. 가장 낙관적인 전망을 낸 기관은 산업연구원(KIET)으로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2%로 잡고 있다. 반면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에도 마이너스 1.8%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며 가장 비관적인 입장이다.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눈물의 골짜기」를 언제 건널 수 있을까. 경제이론에 있어 경기순환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온대지방에서의 사계절 순환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경기순환상의 골(경기침체국면)의 폭이다. 경제가 정상인 상태에서의 골은 「V」자형의 모습을 띤다. 복원력(復元力)에 의해, 농구공이 땅바닥을 차고 공중으로 튕기듯, 경기가 바닥을 치는 순간 상승하는 모델이다. 바람빠진 농구공은 튀어오를 수 없다. 경기순환도 마찬가지다. 복원력을 상실한 경제가 한번 침체되면 다시 상승하지 못하고 바닥을 기게 된다. 이 경우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데는 보통 5∼6년이 걸리고 10년이상 소요될 수도 있다. 전자가 「U」자형 코스이고 후자가 「L」자형 코스다. IMF체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영국이나 스웨덴이 U자형 코스를 택했다. 반면 남미국가들은 70년대말이후 10여년간 바닥상태를 면치 못했다. L자형 코스의 전형이다. 남미국가들은 그 처참했던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눈물의 골짜기」는 험악하다. 맹수 독사 등이 도처에 웅크리고 있고 각종 병균이 득실거린다. 장기불황기의 기업연쇄도산, 금융기관파산, 대량실업, 빈부격차심화 등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한국에 있어 V자형 코스는 남의 얘기다. U자형 코스냐, 아니면 L자형 코스냐의 선택만 남아있을 뿐이다. 올바른 선택은 물론 U자형 코스다.
한국경제에 주어진 과제는 눈물의 골짜기를 얼마나 빨리 넘느냐이다. U자형코스의 도강(渡江)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그 기간을 1년반으로 잡았다. 남미국가들이 10년이상 걸렸고 스웨덴 영국 등이 5∼6년 걸린 것에 비하면 대단한 야심이다. 소위 「압축도강(渡江)」이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이 100∼150년 걸려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불과 30여년만에 달성한 「압축성장」의 기록을 갖고 있다. 압축성장이나 압축도강은 내부의 힘만으로는 아주 어렵다는게 역사적 경험이다. 성공한 경제대통령으로 평가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월남전특수와 중동특수라는 외부의 도움에 힘입어 압축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국난극복의 세계적 지도자로 칭송되는 루스벨트 전 미국대통령과 대처 전 영국총리도 마찬가지다. 루스벨트는 2차대전이라는 초대형 특수를 만났고 대처는 북해유전을 횡재했다. 내부개혁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우리는 이런 특수를 기대할 수 없다. 눈물의 골짜기를 훌쩍 넘을 수 있는 구름다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압축도강이 그만큼 지난한 일이다. 내년도 경제전망을 이런 관점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부당국과 관변을 중심으로 낙관론이 확산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관변연구기관인 KIET가 상대적이나마 낙관론을 편게 심상치 않다. 자칫 낙관론에 빠져 현실진단을 그르칠 경우 L자형 함정에 빠질 수 있다. 98년은 눈물의 골짜기의 초입에 불과하다. 우리 나아갈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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