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이리 오래 살 줄 알았으면 무슨 일이든 시작했을텐데…』 추석에 오랜만에 자손들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올해 여든다섯인 외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뜻밖에도 「무료하게 보낸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은행지점장을 마지막으로, 55세에 일을 그만둔 후 한때 과수원을 하시겠다며 낙향했으나, 얼마 남지않은 여생 왜 고생하며 사느냐는 자식들 성화에 할아버지는 3년만에 과수원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이후 무려 27년동안 외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하지않고 살아왔다. 경제적 어려움없이 동갑인 외할머니와 해로하는 모습이 자손들 눈에는 행복한 노후로 비쳐졌지만, 당신으로선 확실히 아쉬움 많은 삶이었나 싶다.사실 「오래 살 줄 몰랐다」는 말은 내 친할머니께서 더 즐겨하는 말이다. 「익은 감도 떨어지고 선 감도 떨어진다」며 50대부터, 며느리들에게 살아있을 때 잘하라 호통치시던 친할머니는 올해 아흔하나. 여전히 정정하시다.
이런 상황이 나의 「집안일」만은 아니다. 20년전 66세에 불과했던 평균수명이 최근 72세(97년 통계)로 늘어났으며, 2025년엔 77세까지 연장될 것이라는 예측은, 장수집안인 나의 수명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생각만해도 아찔할 정도다. 「이제 늙었으니 죽을 날이 가까왔다」며 무량하게 살아가는 어리석은 일을 더이상 반복하지 않기위해, 기나긴 노년을 활기차게 보낼 많은 준비가 지금부터 시작돼야 함을 절감하는 것이다. 건강은 행복한 노년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리라.
이런 점에서 30∼40대 초반 소장파 학자들이 12일 「밝은 노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임」(대표 서혜경)을 창립한다는 소식은 나를 흐뭇하게 한다. 이제까지 노인에게 일임해온 노인문제를 드디어 젊은 사람들(노인복지관련 교수및 의사, 변호사)이 주체가 돼 보다 활기찬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자금이나 규모면에서 첫손가락 꼽히는 로비단체인 AARP(American Association for Retired Person)같은 노인단체가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져, 노인권익신장을 위해 앞장서 일할 나의 노후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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