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대전국립묘지에 안장일제때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순국한 안원규(安元奎), 안현경(安顯景), 김현구(金鉉九), 김동우(金東寓·이상 미주지역) 선생과 강상호(姜相湖·일본지역) 선생 등 순국선열 유해 5위가 28일 국내로 봉환됐다.
순국선열들의 유해는 이날 오후 4시30분 김포공항에 도착, 서울국립묘지 영현봉안관에 임시 안치됐다가 29일 오후 2시 대전국립묘지 현충관으로 옮겨져 김의재(金義在) 국가보훈처장, 안춘생(安椿生) 광복회장과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애국지사 제2묘역에 안장된다.
이로써 해외 순국독립유공자 179명중 62명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왔고 49위의 묘소는 현지에서 안장됐으며 68위는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묘소확인작업이 진행중이다.
안원규(1880∼1947) 선생은 대한제국 말기 하와이로 건너가 1907년 현지에서 독립운동단체를 통합, 한인합성협회를 조직해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며 이후 미주의 유일한 한인민족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 창립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안현경(1881∼1957) 선생은 1903년 하와이로 이민, 17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장으로 활동했으며 20년에는 임시정부 군무위원, 외정분과위원으로 활동했다.
김현구(1889∼1967) 선생은 자강회 회원으로 구국활동을 전개하다 1909년 도미, 19년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대조선독립단에도 가입했으며 32년에는 윤봉길(尹奉吉), 이봉창(李奉昌) 의사의 의거를 후원했다.
김동우(1896∼1988) 선생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른 뒤 도미,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회 대표를 맡았고 43년에는 미주지역 「맹호군」 대원으로도 활동했다.
강상호(1919∼1945) 선생은 41년 요코하마(橫濱)전문대 재학중 창씨개명 및 한글폐지 반대운동에 앞장서다 44년 10월 일경에 체포돼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안원규·안현경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김현구·강상호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김동우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정덕상 기자>정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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