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퇴출 매듭… 기업 개혁은 미흡환란 이후 10개월, 한국 경제는 정부부문과 금융 실물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개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왔다. 부문에 따라 일부에서는 눈에 띄는 진전을 보인 반면 일부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28일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경제특별기자회견을 계기로 8대 경제현안의 현황과 과제를 전망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기업 구조조정/정부·재벌 힘겨루기속 적정 타협 예상
기업구조조정은 경제전체를 살리기 위한 환부도려내기다. 김대통령도 『5대 재벌을 포함한 재벌기업의 구조조정이 연말까지 완료돼 국제경쟁력이 있는 기업만 남고 나머지 기업이 정리되면 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연내 정부금융기업간 합의하에 재벌구조조정 마스터플랜을 짠다는 기본적 합의는 이뤄졌다. 이달안에 2차 퇴출기업을 골라내고 외국회계법인(자문그룹)이 기업실사에 들어가 11월15일까지 재무구조개선 수정약정의 초안을 작성한 뒤 12월15일까지 최종서명한다는 일정이다. 최종약정에는 빅딜 부분도 포함되므로 5대 재벌간 빅딜협상도 늦어도 11월까지는 끝나야 한다.
그러나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재무구조를 뜯어고치는 작업은 퇴출 합병등 금융구조조정처럼 시한을 정하기 어렵다. 또 기업구조조정은 부분적으로 정부의 경기부양 및 수출드라이브와 상충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부실기업정리와 빅딜유도를 위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강제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5대 재벌간 빅딜협상과 기아자동차 연쇄유찰사태, 2차 퇴출기업선정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향후 정부와 재벌간 상당한 힘겨루기가 예상되며 현실적으로 양자간 어떤 적정타협점을 찾느냐가 관건이다.
◎금융 구조조정/투자신탁 자구노력·제도개선 추진방침
금융개혁은 새 정부 경제개혁의 핵심이다. 김대통령이 이날 『경제구조개혁의 초점은 금융구조조정이다. 금융구조조정이 이뤄져야 기업도 살 수 있고 경제도 살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금감위는 1차 구조조정후 더이상 은행부문에서 『새로 일이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은행권의 퇴출은 끝났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으로 은행권에선 상업·한일등 3개 합병은행, 5개 퇴출은행 인수은행, 조흥등 조건부승인은행을 재정지원과 외자유치등을 통해 「클린뱅크」로 만드는 작업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
증권 보험 투신등의 구조조정은 끝났다고 보기 힘들다. 증권의 경우 장은·동방페레그린의 퇴출결정으로 구조조정이 일단락됐으나 유동성이 나빠지는 곳은 언제든지 적기시정조치를 발동된다. 보험사는 우선 4개 생보사가 퇴출됐으나 추가로 부실보험사가 합병등을 통해 정리될 전망이다. 1차 구조조정에서 투신사 구조조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숙제로 남았다. 워낙 덩치가 커 수술이 어려워 투신사들의 자구노력, 제도개선등을 통해 구조조정이 추진된다. 신용금고와 신협등은 이미 30여개가 사실상 퇴출됐고 추가 부실기관이 발생할 경우 즉각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금융 노사문제/인력조정 싸고 대치 현명한 해법 기대
김대통령은 『기업이 살아야 노·사가 있다』고 밝혀 노·사관계에 앞서 기업의 생존이 우선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은행 노사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재정자금을 수십조원씩 쏟아붓는 금융부문의 경우 말할 나위도 없다. 정부는 현대자동차등 일반 업종과 금융부문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금감위는 공적자금 대량 투입후 은행들이 부실영을 면치못할 경우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따라서 흑자경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이뤄져야 하며 인력조정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금융산업은 전 산업의 혈맥과 같은 기간산업인 만큼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확실히 회복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노련등 은행노조는 이번 인력조정에 순순히 따를 경우 은행 노조의 존립기반 자체가 와해될 것을 우려, 완강히 반발하고 있다. 은행 노조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일방적인 강제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은행 노조는 금융위기의 책임이 정치인과 금융당국에 있는데도 은행원들에게 전적으로 뒤집어씌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업 문제/공공근로 효과 미미,재원 효율 사용을
정부는 올 하반기 및 내년중 실업자를 170만∼180만명으로 잡고 실업대책을 마련해왔다. 그러나 불완전취업자 등 실질 실업자는 이미 200만명을 넘어선데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공공근로사업 등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회피할 수 없다』고 정부의 고충을 토로한뒤 내년 예산에 8조원 이상의 실업재원을 반영하는 등 실업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제구조에 맞춰 2차 산업보다는 3차산업, 문화예술 및 영상산업, 벤처기업 등의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동시에 『실업자들이 눈을 낮추면 10만명 정도는 일자리를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자구노력」을 요청했다.
이기호(李起浩) 노동부장관은 생산성있고 공공성있는 근로사업을 개발하는 등 비효율적인 대책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업재원이 효율적으로만 사용된다면 현재보다 실업자 억제 및 고통 경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또 실제 실업자가 정부 전망치를 넘어설 것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제2환란/내년까지 450억弗 갚아야,수급조절 필요
러시아 사태이후 「제2의 환란(換亂)」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선진국 자본이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데다 우리나라가 올해와 내년에 갚아야 할 외채가 450억달러에 달해 외환부족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제2환란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김대통령은 『우리가 그렇게 약했다면 러시아 사태 및 일본의 위기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나 오히려 환율 금리 물가 등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국가파산위기 때 38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외환보유고가 현재 사상최고치인 440억달러로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외환수급에 차질이 없을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와 관련, 이규성(李揆成) 재정경제부장관은 『올해말까지 갚아야 할 외채가 90억달러, 내년상환분은 360억달러』라며 『올해와 내년의 경상수지 흑자규모와 외국인투자를 감안하면 외환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재정적자 확대 및 금리인하 등 내수진작에 동의한 것은 우리 외환사정이 낙관적이라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부문 개혁/지방행정기관 등 對民업무조직도 손질
공공부문의 개혁은 정부조직과 공무원사회, 공기업 및 산하기관을 구조조정해 예산을 절감하고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까지 정부조직의 경우 전정권보다 장관 9명이 감축됐고 중앙행정기관은 21개에서 17개, 공무원은 1만7,597명 감축됐다. 공무원사회에서도 내년중 기본급의 10%상당액을 삭감하고 성과급제도를 도입하며 민간전문가를 채용하는등 방침을 확정했다.
공기업의 경우 민영화를 통해 99개의 공기업을 21개로 줄이고 공단등 133개 정부출연·위탁기관의 경우 유사 중복기능을 통폐합키로 하고 예산배정을 조정하는등의 방법으로 이를 추진중이다. 김대통령은 『국민부담을 가중시켜온 체육진흥기금등의 준조세를 정비해 2001년까지 7,800억원의 국민부담을 줄일 계획』이라는 요지로 대대적인 공공개혁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내년중 정부는 구조조정의 성과만으로 1조2,000억원, 공기업 매각을 통해 2조1,000억원등 총 3조3,000억원의 공공부문 개혁성과가 기대된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공공부문의 개혁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지방행정기관등 대민(對民)업무조직의 개혁을 시사했다.
◎경기회복 시점/경기부양 성공땐 내년 중반이후 가능
정부와 민간연구기관, 국제통화기금(IMF)등이 점치는 국내경기 회복 시점은 제각각이다. 국내 경제는 유례없는 침체에 빠져있고, 현재로서는 회복세를 가늠할만한 청신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금융구조조정 마무리와 경기부양결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대통령은 『내년 중반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고, 재정경제부도 올해에는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마이너스 5∼6%로 떨어지지만 내년에는 1.8%의 성장세로 돌아서고 2000년에는 4%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IMF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하기 때문에 내년에도 성장률이 0%를 기록하고 2000년에야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는 것이 IMF의 공식전망이다. 삼성 LG 등 민간연구소들도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내년 성장률이 다시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다채로운 분석들을 종합해보면 구조조정과 경기활성화대책이 상당부분 성공하는 상황을 전제로, 내년 중반이나 하반기부터는 내수 생산 투자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플러스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경색 해소/BIS 공포·도산위험 등 두 악재 풀어야
현 신용경색의 원인은 은행들의 BIS공포와 기업들의 도산위험등 두가지. 해법 역시 두 악재를 함께 풀어야하는 것이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원을 통해 BIS비율을 10%이상까지 맞춰주기로 한 이상 신용경색의 「은행쪽 요인」은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금융구조조정이 끝나 10월부터 은행들이 「클린뱅크」로 전환돼 제기능을 다하게 되면 대출이 손조롭고 자금경색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BIS관문은 이번 한번 통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매 분기별로 BIS점검을 받아야 하고, 부실 자체가 임직원의 생사와 직결되는 이상 은행들로선 「대출씀씀이」가 쉽게 커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기업쪽 요인」이다. 악성적 재무구조의 원죄를 진 국내기업들의 도산위험은 단기경기부양 정도로 제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은행임원은 『기업재무구조가 근본적으로 호전되지 않는 한 신용경색의 완전타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본격적 신용경색해소는 기업구조조정이 끝나 옥석이 가려진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신용경색회복은 경기부양과 수출확대로 기업들의 영업기반이 얼마나 회복되느냐, 또 기업구조조정이 얼마나 빨리 마무리되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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