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부도율 작년의 2배 이상/유통망은 붕괴,개발자는 빈털터리/한국의 ‘빌 게이츠’들은 해외로…국내 소프트웨어(SW)산업은 한마디로 붕괴 직전입니다. 현재 빚 안지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소비자는 소프트 웨어를 외면하죠,유통망은 완전히 허물어졌죠, 개발자는 굶어죽기 일보직전인게 현실입니다.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합니다』
중소기업형 토탈솔루션업체인 피코소프트의 유주한사장(37)은 국내 소프트 웨어산업의 현주소를 「개발유통소비의 3박자가 모두 무너진 상태」라고 표현했다. 같은 시기에 출발했던 업체들이 상당수 전업했고, 남아있는 업체들도 대부분 직원들을 모두 내보낸 채 간판만 유지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인 소프트 웨어산업. 세계 소프트 웨어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94∼97년 11.1%로 세계 국민총생산(GNP) 성장률(97년 4.4%)의 3∼4배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소프트 웨어를 필두로 한 벤처산업이 국제통화기금(IMF)위기 극복의 열쇠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실상은 지극히 비관적이다. 세계 각국이 국가경제의 사활을 걸고 투자하는 소프트 웨어산업이 국내에서는 걸음마단계에서부터 고사위기에 있는 것이다. 올들어 소프트 웨어업체 부도율은 지난해의 2배이상으로 늘어났고 성장률은 40%대에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한국판 빌 게이츠」를 꿈꾸던 젊은 두뇌들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일자리를 찾아 미국 일본 등지로 떠나고, 야심에 찬 신제품을 내놓은 소프트 웨어벤처들은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기도 전에 도산하고 있다.
소프트 웨어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워낙 좁은 시장에 있다. 소비자들이 소프트 웨어를 구매해야할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는데다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마구잡이로 복제해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판로가 개척될 수 없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기획조사부 정남규차장은 『시장이 좁다는 것, 아무리 잘 만들어내도 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것이 소프트 웨어업계의 숨통을 죄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경쟁력 가질 수 있는 분야는 겨우 워드프로세서 정도. 그러나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는 자그마치 200명의 엔지니어가 달라붙어 개발하고 있으나 한글과 컴퓨터사(한컴)의 경우 고작 10명 내지 20명이 참여했으니 경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삼성 훈민정음도 개발인력이 15명 내지 20명에 불과하다.
삼성같은 대기업이 소수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장이 좁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국인이 우수하다고 해도 연구 인력 200명과 20명의 차이는 제품 성능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시장이 적으니 투자를 못하고, 투자를 안하니 좋은 제품이 안나오고,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니 소비자가 외면하는 악순환의 시작은 바로 시장규모의 영세성이다.
「아래아한글」로 코리안드림을 꿈꾸던 한컴의 경영난이 몰고온 파장에서 드러났듯이 불법복제도 소프트 웨어산업의 기반을 뒤흔드는 해악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국적 경영컨설팅 그룹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는 지난해 국내 시장의 불법 복제율을 67%로 집계했다. 지난 10년간 시장에서 부동의 정상을 지켜온 아래아한글의 경우 실사용자는 400만명 이상이지만 정품사용자는 20%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됐다. C사의 L모기획팀장은 『정부기관의 80%가 불법복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가가 개발, 판매, 자금조달, 시장확대 등 모든 것을 도맡아야 하는 한국형 벤처체제 역시 소프트 웨어산업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벤처 성장의 밑거름이 돼주는 벤처자본의 부재는 심각한 걸림돌이다. 패키지 소프트 웨어업체 대표 D씨는 『미국에서 창업을 꿈꾸는 개발자들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하면 된다. 스타를 만들줄 아는 미국의 벤처자본은 좋은 기획이라면 아이디어 단계에서 흔쾌히 투자를 결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담보가 없으면 한푼도 빌릴 수 없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국내 소프트 웨어업체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적 특성」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아래아한글도 그렇고, 비교적 국내업체가 경쟁력이 있는 그룹웨어시장 역시 복잡다기한 결재문화란, 한국적 특성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기업문화가 다른 서구의 프로그램들로서는 이 경쟁에 뛰어들기 쉽지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룹웨어시장도 대기업 계열 소프트 웨어사가 모두 장악하는 바람에 업계의 8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육의 문제이다. 강원대 한경구교수(인류학)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어느 정도이상 잘해야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한국의 입시제도, 학생들의 적성을 개발하는데 주력을 두지 않는 교육제도가 결국엔 소프트 웨어산업의 발달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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