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재벌의 구조조정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하위 그룹들은 금융권과의 워크아웃을 통해서, 그리고 5대 그룹들은 서로간의 빅딜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하위 그룹의 구조조정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데 반해, 5대 그룹의 빅딜은 강력한 정부의지 속에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빅딜에 대해 5대 그룹들이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빅딜은 재벌이 사업구조를 조정하기위한 여러 방법중 하나이다. 사업구조조정이란 기업이 기존 사업에서 퇴출하고, 신규 사업으로 진출하면서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업 구성을 바꾸어가는 작업이다. 이때 퇴출하려면 기존 사업을 청산하거나 타인에게 매각해야 하고, 신규 진출하려면 사업을 신설하거나 매수해야 한다.
미국과 같이 사업 매매시장이 발달해 있는 곳에서는 거래가 쉽게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그러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이 취약한 곳에서 물물교환이 일어나듯이 대형 그룹간에 사업을 물물교환하는 빅딜이 유력한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물물교환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돈이라는 객관적 가치평가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이 쉽지 않다. 따라서 협상능력에 따라 거래당사자들 간에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특히 손해 보는 쪽에서는 거래조건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므로 실제거래는 생각만큼 성사되지 않는다.
물물교환은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 단계의 거래라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만,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빅딜의 물물교환적 특성을 이해하고, 빅딜을 통해 재벌의 구조조정을 일거에 달성하겠다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이보다는 빅딜을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구조조정의 시발점으로 삼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재벌이 가진 자원을 특정사업에 집중함으로써 그 사업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빅딜의 궁극적 목적은 재벌들이 그동안 벌여온 다양한 사업구조를 정리, 전문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5대 재벌이 진출해 있는 수많은 사업을 고려할 때 빅딜 만으로 이들이 전문화의 길로 접어드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빅딜에서 당장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과잉시설과 경기불황으로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해있는 재벌의 사업 중에 외부시장에서 원매자를 찾기 어렵거나 대주주의 자존심 때문에 처분하기 어려운 사업들을 빅딜로 처리함으로써, 이들 사업의 퇴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빅딜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빅딜에 참가하는 각 재벌의 경제적 효익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비경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업을 빅딜 대상으로 삼아 특정 재벌에 집중시켜주어야 한다. 규모의 경제가 있는 사업은 한 경영주체에게로 통합할 필요가 있고, 범위의 비경제가 있는 사업은 한 경영주체가 전업화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빅딜이 성공하기 위한 충분조건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재벌들은 사업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 및 긴박성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빅딜을 막는 제도적 규제를 철폐, 또는 완화해야 한다. 셋째, 빅딜의 내용을 객관적이고 공평한 방법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모든 참여재벌이 윈(Win)윈(Win) 결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빅딜은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빅딜이 기업으로 하여금 자원을 집중하여 경쟁력을 향상케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빅딜의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서 경쟁적인 시장구조가 독과점적인 모습으로 바뀔 가능성이 생긴다.
또한 정부가 빅딜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채택하는 지원조치에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으면 국내로부터 사회적 비판이 나타나고, 객관성이 없으면 국제기관과 외국 정부들이 압박을 가해올 것이다.
특히 빅딜이 정부가 재벌에게 세제, 금융 면에서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편법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빅딜은 국내에서는 물론, 모든 해외 투자가들이 주시하는 세계적인 사건이다.
빅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빅딜을 유도하기 전에 국가 장기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빅딜에 대한 정부개입의 범위와 한계를 분명히 하고 대외적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빅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재벌들이 빅딜의 내용, 즉 사업구조(structure)의 변화뿐 아니라 빅딜의 과정(process)에 대해 철저한 대비를 해야한다. 즉 빅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여러 가지 문제, 즉 기존 조직의 정비, 기존 기업문화와 신규문화의 갈등 해소, 기업 비전 제시 등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빅딜의 과정에서 일어날 근로자의 정리해고, 일시적인 경제침체 등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이러한 후유증이 발생했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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