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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인가 지배층인가/배정근 여론독자부장(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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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인가 지배층인가/배정근 여론독자부장(광화문)

입력
1998.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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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사로 쏟아지는 독자들의 여론은 매우 거칠다. 예전보다 휠씬 많아진 독자 전화는 우선 목소리부터 흥분돼있고 내용도 답답한 현실에대한 강한 불만과 질책 일색이다. 말없는 팩스용지나 컴퓨터를 통해서 접하는 독자의 소리들도 무엇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 발전적으로 바뀌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 좌절, 항변으로 가득차 있기는 마찬가지다.그들은 왜 분노하고 그 분노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 대답이 될만한 독자들의 글­서로 다른 사람들이 보냈지만 논지는 신기하리만큼 똑같은 글­을 최근 몇차례 받았다. 그것은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지도층」이란 표현에 대한 날카로운 반박이었다.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 …』『병역비리에 사회지도층 인사 자제가 다수 포함…』『지도층 인사들이 호화분묘 조성…』같은 제목의 기사가 나가면 다음날 어김없이 이런 반론이 빗발친다. 얼마전 서울대 총장의 불법과외 관련 기사에 대한 한 독자의 항의편지를 보자.

『도대체 누가 누구를, 무엇을 지도한다는 말인가. 고액과외를 지도한단 말인가. 부패와 비리 무능력을 지도한단 말인가.(중략) 제발 사회 지도층이란 말을 그만해 줬으면 한다. 그런 이들에게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하루하루 어려운 나같은 이에겐 아주 참담한 심정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사회지배층이라고 해달라(독자 손광식씨)』

사회지도층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를 가르쳐 이끌어가는 계층」을 뜻한다. 하지만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언론의 조어(造語)이다. 때문에 개념이 불분명하지만 대강 높은 직책이나 영향력을 가졌거나 교육수준이 높은 지식인 집단, 즉 정치인, 고위관료, 교수, 언론인, 변호사, 대기업간부, 저명인사같은 부류를 지칭한다.

언론이 지도층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까닭은 이들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실세집단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보다는 그들에게 힘과 지위에 걸맞는 높은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 자기희생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제(신분에 따른 의무)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독자가 지적한대로 지도층이 아니라 지배층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진정 지도층다운 지도층을 보아오지 못했다. 자신에게 부여된 특권과 힘은 마음껏 즐기면서 여기에 동반되어야할 의무와 자기희생은 외면하는 지배층만을 보아왔을 뿐이다. 지금 모든 서민들을 고통속에 허덕이게 하고 있는 IMF체제부터가 지도층이 부른 재앙이다. 집권세력의 무능과 독선, 관료들의 부패와 권력남용, 재벌들의 절제하지 못하는 욕망의 산물이 오늘의 위기가 아니던가.

더욱 답답한 것은 지금의 정치권을 보거나, 정부를 보거나 재벌을 보더라도 지도층의 행태에 전혀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사정수사를 통해 정치권은 너나없이 「걸면 걸리는」부패와 비리의 온상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그들은 오히려 국가기관인 국세청을 정치자금모금의 하수인으로 타락시키고도 「민주주의 수호」를 외칠만큼 도덕불감증에 빠져있다. 야당만 부패한 듯이 몰아붙이는 여권태도도 개혁세력의 자세가 아니다.

공공개혁은 어물쩡 넘어갈 태세이면서 은행들에는 40% 인원을 무조건 감축하라는 정부의 일방적 자세에서도 자기 희생의 의지는 발견할 수 없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서민들의 몫일 뿐이다.

개혁이 진정으로 성공하려면, 국민 모두가 그 개혁의 고통을 흔쾌히 받아들이려면 지도층의 대오각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의 가시밭길에 먼저 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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