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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덴노’의 訪韓 조건/鄭璟喜 언론인(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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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덴노’의 訪韓 조건/鄭璟喜 언론인(한국논단)

입력
1998.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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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들은 그들의 임금을 「덴노」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天皇」이라고 쓰지만 「덴노」라는 소리로 봐서 원래에는 「天王」이라고 썼던 것같다. 3세기 우리의 마한(馬韓)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천군(天君)이 있다』는 중국의 역사기록이 있다. 그 「天君」이나 「天王」이나 같은 뜻의 같은 말이다. 일본의 덴노는 「天君=天王」의 족보, 다시 말해서 우리 역사에 이어지는 계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임금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의 후예라는 뜻이다.임금이 천손의 후예라는 믿음은 우리의 경우 이미 삼국시대 백제에서 청산된 아득한 과거의 유물이다. 근래 한국에서는 일본의 임금을 「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 정부는 저들이 부르는대로 「天皇=천황」이라 부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덴노」라는 일본말 그대로 부르는게 옳다. 우리 국민이 그 뜻을 알건 모르건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다만 덴노에 대한 경칭(敬稱)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자청해서 「폐하」를 붙일 필요는 없다. 『덴노가…』 또는 『덴노께서…』라 하면 충분하다.

일본 임금의 명칭보다는 한·일외교관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보다 본질적인 과제다.

한·일외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과거청산」이다. 경제 군사는 물론이고, 넓은 뜻에서의 대외정책은 두 나라 모두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큰 쟁점이 없다.

우선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것은 일본이 우리측에 대한 「과거청산」을 막무가내로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일본은 과거 군사강점의 역사를 사죄하지 않았다. 이 점에 관해 국민은 역대 군사정권의 거짓말에 속아왔다.

「사죄」는 죄를 지은 쪽에서 잘못임을 인정하는 구체적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사죄」라는 말을 분명히 써야만 성립된다. 「유감」이라는 말은 사죄가 아니다.

65년 한·일협정이후 일본이 「유감」이 아니라 「사과」를 말한 것은 25년 뒤인 90년5월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사과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95년 11월 사회당출신 무라야마(村山富市) 총리가 비로소 『한·일합방과 그에 앞서는 몇개의 조약은 불평등조약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평등하지만 『적법한 조약이었다』는 전제가 있다.

뿐만 아니다. 일본은 군대위안부나 징용노동자에 대한 「개인보상」을 거절하고, 사할린에 버리고 달아난 징용노동자의 사후처리를 거절하고 있다.

원래 일본은 「왜구(倭寇)」로 알려진 해적의 나라였다. 문명세계의 일원으로 대외관계를 가져본 일이 없는 섬나라다. 도쿠가와(德川)시대 조선통신사가 유일한 「문명의 빛」이었다. 그래서 서양무기로 무장한 일본사람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한국과 중국에서 「야만인」으로 표변하고, 만행을 일삼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7일 일본방문 길에 나선다. 「21세기를 위한 협력관계」를 위해 간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일본의 덴노가 이런 상황 속에서 서울에 와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못박아 둬야겠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우리의 중요한 이웃이다. 자칫 덴노에게 시위군중의 규탄이나, 만에 하나 돌팔매라도 날아든다면 두 나라의 우호·협력관계에 상처를 입힐 것이다. 다만 빌리 브란트 구 서독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덴노가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땅바닥에 무릎끓고 사죄하러 온다면 한국방문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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