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길고도 길었던, 긴 여름이 지나갔다. 세상이 어려운 탓에 가을이 왔으나 도무지 가을이 아니다(秋來不似秋). 거둘 게 없는 가을이라니. 하늘만이 높다.저렇게 높은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라는 표현은 두가지가 엄청난 격차를 보일 때 쓰인다. 최근의 사정(司正) 정국에서 「제도공략」과 「사람공격」이 그쯤 된다. 검찰이 정치권의 대어(大魚)들을 마구 공격하고 있다. 사람공격이다. 일방적인 게임인 듯하고 조만간 뭔가 결판나 세상이 달라질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오죽 좋겠는가. 애석하게도 이렇게 나가면 세상의 인적(人的) 구도만이 바뀔 뿐 세상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제도는 한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바닷가의 백사장에서 한 움큼의 모래를 팠을 때 고인 물을 떠내는 것과 같다. 아무리 떠내본들 물은 또 고이게 마련이다. 모래벽을 달리 손대지 않는 한 마찬가지다.
모래벽을 고치는 제도공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경제난으로 멍든 사람들이 바라는 건 정치판이든 어디든간에 인적 구도의 단순한 교체가 아니라 「시스템」, 제도의 변화이다. 특히 법위반을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시스템, 이 악폐를 뜯어 거꾸러뜨러야만 비로소 세상이 달라진다. 사정을 시작한다든지, 사정을 끝낸다든지 하는 말 자체가 악폐고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불법이다. 경찰은 신고여부를 떠나 도둑이나 폭력배 등 법위반자를 잡아야 마땅하다. 알고도 안 잡으면 직무유기의 불법이다. 사정당국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법위반 행위와 그것을 처벌할 것이냐에 대한 정치적 판단 사이에 연결된 사슬을 끊지 못하면 또하나의 사람공격으로 끝난다.
사정과 정치 사이의 단절을 위해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점은 국민들이 검찰등 사정당국에 부여한 권한은 「수사권」이지 「수사재량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액과외사건은 또 어떤가. 어디론가 실종된 듯이 사라진 그 사건의 행로를 보면서 이 가을, 법이 경제난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주기 보다는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마저 갖게 된다. 추운 가을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