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의 세계는 막후의 세계다. 막후에서는 정사(正史)와 비사(秘史)가 얽히고 엉뚱한 에피소드로 대사(大事)의 물줄기가 바뀌기도 한다. 알고보면 큰 일일수록 이면에 얽힌 사소한 인연, 우연한 사건이 중요했던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초대 미스코리아 강귀희(姜貴姬)씨가 최근 발간한 자전에세이에서 고속철도사업의 프랑스측 로비스트로 활동한 내막을 밝혀 화제다. 전반적인 내용은 그저 그녀의 살아온 얘기지만, 그 부분에 관심이 쏠린다.■강씨의 책을 훑다 보면 한국과 프랑스의 대통령들에게까지 연을 뻗친 그녀의 사교범위에 놀라게 된다. 결혼에 두 번 실패한 뒤 파리로 건너가 엘리제궁 앞의 한식당 「르 서울」을 운영하면서 축적된 그의 「인맥」은 테제베(TGV)가 고속철도 차종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 자산이 됐다. 강씨는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때 부인 이순자(李順子)씨에게 진주목걸이와 루비반지를 선사하며 접근했고 미테랑 대통령, 크레송 총리와도 사적 친분이 있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인간적인 면모는 있게 마련인데, 강씨는 이런 점을 놓치지 않는 타고난 사교술이 있었던 것 같다. 미테랑 대통령과는 식당고객으로 알게된 뒤 홍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국내에선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시절 부인 김옥숙(金玉淑)씨를 직접 만나는가 하면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때는 사람을 내세워 정치자금제공을 타진하기도 했다. 강씨는 또 막후에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방불계획을 성사시켰으나 10·26으로 불발됐다고 썼다.
■그는 차종선정을 둘러싸고 독일의 이체(ICE)측과 벌인 로비경쟁도 기술하고 있어 당시 정·관계에서 벌어진 로비의 세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김전대통령의 사돈이 등장하고 북방외교 책임자 P장관, 황병태(黃秉泰) 주중대사, S·C그룹 회장, 여야중진의원 등도 언급된다. 로비활동비 계약액은 총수주금액 21억달러의 5%. 94년 환율로 840억원이었다. 이중 자신의 수중에 떨어진 액수는 16억원이었다니 나머지는 엄청난 로비자금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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