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동정… 냉소… 우려… 제각각스타 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자 전세계는 충격과 경악에 휩싸였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간의 은폐된 성관계 실상을 백일하에 드러낸 보고서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천박한」(르 피가로)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희한한 것은 유럽에서 오세아니아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이 곤혹스런 보고서에서 쉽게 눈을 돌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클린턴측이 즉각 『개인 성생활을 상세히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애써 폄하한 이 「삼류소설」에 지구촌의 시선이 묶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를 읽는 풍경에는 클린턴 스캔들이 오늘의 세계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파리 공산당 기관지 루마니테는 『워싱턴, 링컨, 깨어나라. 모두가 미쳤다!』고 개탄했다. 경제지 라 트리뷘도 『미국 청교도주의의 끝이 결국 초현실주의적인 사이코 드라마인가』고 꼬집었다. 자유와 정의를 전매특허처럼 부르짖으며 팍스아메리카나를 관철해 가는 초강대국에 대한 통렬한 야유일 것이다.
프리 섹스와 성의 상품화가 갈수록 성모럴을 지배해가는 시대에서 클린턴 스캔들은 성가치관의 혼란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윤리적 우려의 시각도 많다.
반면 프랑스 권위지인 르 몽드는 미국적 가치의 상징적 추락에서 『미국식 자본주의의 몰락과 혼돈의 세기가 다가옴』을 읽어내고 있다.
신중하고 현실적인 관점이 시선을 모은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위상이 약화한 대통령과 그에 따른 국제적 지도력의 부재는 분명 전세계에 불행한 소식』이라고 짚었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 역시 『유일한 세계권력이 그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파장을 우려했다.<장인철 기자>장인철>
◎NYT 사설/“하원은 당파떠나 청문회여부 결정을”
뉴욕 타임스는 13일자에 「의회의 정의(正義) 찾기」란 제목의 사설을 실어 보고서 공개의 당위성을 옹호했다. 다음은 요약.
미국민들은 지난주말 무거운 가슴과 요동치는 감정을 품고 클린턴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성관계를 담은 케네스 스타 검사의 주장을 대해야 했다. 이제 클린턴이 대통령 직무수행에 적합한 지 여부에 대한 공식 판단은 의회가 맡게 됐다. 특별검사의 역할과 권한을 둘러싼 논쟁을 뒤로 하고, 헌법에 명실상부하게 보장된 의회의 권한과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이는 건전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탄핵 청문회 개최 여부를 결정할 하원의 임무는 막중하다. 하원의 최우선 책임은 이번 문제를 당파성을 배제한 채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 보고서의 기록과 해석에 대한 백악관측의 공박이 있는 만큼 14일 개시되는 법사위원회는 「진실 규명」 조직이 돼야 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들은 이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길 바란다. 클린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계속될수록 대통령 책무도 약화할 것은 당연하다. 11월 중간선거가 있더라도 탄핵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는 10월 회기 종료 이전에 결정돼야 한다. 워터게이트사건 당시 민주·공화 양당의원들은 정치적 이해는 접어둔 채 오직 진실 규명에만 몰두했다. 클린턴의 경우에 있어서도 의회는 헌법 정신에 의거한 행동으로 공정했다는 역사의 평가를 남겨야 한다.
◎아사히신문 사설/“지도력 약화땐 문제” 사임 우회적 주장
아사히(朝日)신문은 13일 「쫓기는 대통령」 이란 사설에서 『대통령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넌지시 사임을 주장했다. 사설 요지.
스타 보고서는 대통령과 전백악관 실습생의 성적 관계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의혹을 감추려는 대통령의 「위증」 「사법방해」 「권력남용」 등을 하나 하나 지적했다. 검찰측은 「대통령을 탄핵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백악관측은 「개인적인 잘못」이라는 이유로 탄핵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클린턴 스캔들은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정치적 음모의 측면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존엄이 손상되고, 이에 따라 미국민의 정치불신이 커져 대통령의 지도력이 저하된다면 「개인적인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아시아에 이은 러시아 경제위기로 미국 경제도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미국민을 노린 테러가 세계 각지에서 잇따르고 있는 것도 불안의 불씨다. 이런 때일수록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보고서가 공표되기 전 대통령은 백악관 조찬모임에서 사죄했다. 이를 국민이 어떻게 받아 들일까 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클린턴은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속에서의 미국과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까 하는 해답도 알고 있지 않을까.
◎르 몽드 “미국의 새 매카시즘” 스타 비난
프랑스 유력지의 사설은 스타 보고서에 냉소적이고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는 동정적이다. 섹스문제로 대통령을 도마 위에 올리고 국회가 관련보고서를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행위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관점이 있다. 성관계에 대해서는 정치인 등 누구를 불문하고 개인의 사생활로 치부, 문제시하지 않는 것이 프랑스 사회의 풍토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스타 검사를 「냉혹한 아야툴라(호메이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등으로 비난하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60년대 미국영화의 주인공으로 광적인 핵전쟁주의자. 반면 클린턴에 대해서는 「거미줄에 잡힌 가엾은 아이」「슬픈 바보」 등으로 다분히 동정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르몽드는 12일 「미국식 지옥」이라는 사설에서 이번 사태를 『미국의 새로운 매카시즘』으로 규정했다. 즉 50년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섹스 공포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스타 보고서를 「영혼까지 송두리째 박해하는 괴물」 「미국식 법절차가 만들어 낸 괴물」이라고 평가하며 『미국 의회와 인터넷 마술에 의해 우리는 모두 엿보기 좋아하는 호색가가 되어 버렸다』고 한탄했다.
르 피가로는 「포박된 걸리버」라는 제목의 1면 컬럼에서 『미국에서 위선적 정치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며 『도덕적으로 클린턴보다 나을 것이 없는 국회의원들이 과거 매카시 의원이 벌였던 것과 같은 무책임한 십자군전쟁을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이 신문은 『만약 클린턴이 수다스러운 젊은 인턴 여직원보다 분별있는 숙녀를 선택했더라면…』이라며 클린턴을 안쓰러워 했다.
리베라시옹은 르윈스키 스캔들은 육체문제와 국정이라는 원초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두 세계를 하나로 끼워 맞춘 「초현실주의 희극」이라고 평가했다. 르몽드는 이날 스타 보고서 내용을 16쪽의 별지부록에 전재했다.<파리=송태권 특파원>파리=송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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