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와 소수집단에만 안주해온 ‘그들만의 문화’ 90년대식 자유와 실험과 대안을 추구하며 ‘독립예술제 98’을 계기로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문화계의 반란자인 「언더그라운드」. 이들이 본격적으로 대중과의 의사소통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텔레비전이 대표하는 대중적 매너리즘을 거부하는 비주류였다. 상업주의와 제도권에 포섭되지 않는 것을 제1강령으로 삼아 땅밑 문화·소수의 마니아 문화를 고수해 왔다. 『문화적 자존심은 지키되 대중 곁으로 다가가자』. 이것이 지금 언더그라운드의 새로운 화두이다.
지난달 25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계속되는 「독립예술제 98」은 언더그라운드와 대중이 만나는 첫 대규모 행사. 비디오 영화 연극 미술 퍼포먼스 팬터마임 만화 보디페인팅 등 모두 11개 장르에서 73개의 「언더」팀이 참여했다. 「허벅지」「갱톨릭」「볼빨간」 등 인기 밴드가 색다른 장르의 곡들을 연주하고 126편의 독립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무용과 연극의 결합, 대사가 거의 없는 연극 등 낯선 공연들도 줄을 잇고 있다.
독립예술제를 계기로 언더들의 활동반경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때마침 정치권이 일반 요식업소에서는 공연할 수 없도록 하는 식품위생법 시행령을 고쳐 클럽 공연을 자유화하는 방안을 제기, 언더 밴드들의 운신폭이 넓어지게 됐다. 서울 신촌에 자리잡은 100여개 클럽은 클럽합법화를 축하하는 무료공연을 10월중에 가질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개방적인 클럽연대」(개클련),「아름다운 밴드연합」에 이어 최근에는 「클럽에서의 라이브공연 합법화를 위한 연대모임」, 「저예산 독립영화협의체」등,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언더 그라운드」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모임이 잇따라 결성되고 있다.
마니아와 소수집단속에만 안주해온 이들이 최근들어 바깥세상으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는 것은 대중과의 호흡에 대한 갈증때문이다. 상업적인 주류문화만 존재할뿐 비주류문화는 「소문」처럼 소수에게만 인식되는 현실에서 대중과 격리될수록 이들의 존재는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극무용단 「모듬」의 김기석씨(29)는 『다양한 문화세계를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립예술제 98」에서도 관객과의 간격을 최소화하는 공연이 주종을 이루었다. 인기밴드인 「허벅지」「마고」등이 연주할때는 관객이 모두 어울려 춤도 추고 노래도 따라 불렀고 풍물팀인 「아름나라」는 막걸리와 부침을 객석에 돌리면서 떠들썩한 시골장터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가 지향하는 세계는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이들에게 가위질이나 검열은 없다. 이들은 FM(짜여진 형식)을 거부하고 주류들이 쉽게 포기한 실험정신을 숭상한다. 70∼80년대 언더가 운동권적 성향을 지녔다면 90년대 언더는 자유와 실험, 대안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들은 언더라기 보다는 비주류, 마이너(소수), 얼터너티브(대안), 인디(독립·independent), 비제도권, 대안문화세력 등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인기 원맨밴드인 「볼빨간」은 사회에 대한 조소를 표현하기 위해 프로그래시브 지루박이란 색다른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언더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의 토양은 아직까지 척박하기만 하다. 제도권 예술단체의 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연장을 빌리지 못하고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 독립예술제를 준비했던 놀이마당 프로그래머 이승욱씨(30)는 『개막공연을 마로니에 공원에서 하기위해 종로구청을 10번이상 찾아가 사정했다』며 『재원마련을 위해 문예진흥기금도 신청했으나 「이유없다」는 한마디로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마임공연을 하는 김봉석씨(33)는 『제도권 협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작품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관심의에서 번번이 떨어지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도 언더의 발달을 가로막는 것은 취약한 자금사정. 외부 지원을 받는 것은 하늘이 별따기와 같다. 연극팀인 「프로젝트1」의 김민정씨(29·여)는 『아무리 작은 공연이라도 2,000만원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공연수익으로는 대관료도 못낼 형편』이라며 『공연을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대중곁으로 막 다가선 언더그라운드. 그들이 대중문화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지는 그들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70년대 「섹스 피스톨스」를 필두로 한 언더그룹들이 왜곡된 음악시장을 개혁했던 영국의 예는 언더 예술인들이 풍요로운 문화를 만드는데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이규석씨(28)는 『언더는 대중문화가 잃어가는 문화적 다양성을 채워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언더 문화의 원형질은 훼손하지 않되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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