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문제를 흔히 「건드리면 터지는 판도라의 상자」로 일컫는 것은 바로 정치자금의 모순성을 압축한 표현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면 안되는 상자고 내용물은 차라리 모르는게 낫다는 뜻이 이 표현에 담겨있다. 정치자금 하면 은연중에 「음성적 정치자금」을 의미하지만 정치세계에서 거액이 오가도 정치자금으로 간주되면 처벌되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평소 지구당과 지역구, 사람관리에 돈이 필요하고 선거 때면 천문학적 돈이 정치권에서 쏟아진다.■정치를 할 줄 아는 능력은 돈을 만들줄 아는 능력과 통한다. 여기에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의미가 없었던 게 지난날이다. 과거 야당의 정치자금 조달은 특히 그랬다. 정부여당 눈치를 보느라고 선관위 등 공식창구를 통해 야당에 자금을 후원해 준 기업은 없었다. 김대중대통령은 야당총재시절 정치자금이 이슈화할 때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야당으로서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요지의 호소겸 설명을 하곤 했다.
■비단 군사정부 아래서만이 아니었다. 김영삼정권하에서도 내놓고 야당에 정치자금을 준 경우는 흔치 않았다. 지난해까지 중앙선관위의 지정기탁금제 내역을 보면 이점이 잘 드러난다. 가령 96년 선관위에 지정기탁된 정치자금 340억여원은 모두 신한국당 차지였다. 지난해에도 한나라당의 지정기탁금은 365억여원에 달했으나 국민회의나 자민련 등 야당에 기탁된 것은 한 푼도 없었다. 여당독식의 이 제도는 지난해 11월14일 개정된 정치자금법에서 폐지됐다.
■지난 상반기중 여야의 후원금 모금실적을 보면 돈은 역시 여당으로 몰린다는 돈의 속성과 세태가 재확인된다. 정당후원금의 경우 국민회의는 164억여원을 모금했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 1억5,000만원의 130여배에 달한다. 자민련도 69억여원을 모았으나, 지난해 상반기중 60억여원의 실적을 올렸던 한나라당은 이번에는 13억여원에 그쳤다. 여야가 바뀌니 돈의 흐름도 바뀐 것인데, 야당하기가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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