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슬퍼하지 않으려 합니다. 눈물 흘리지 않으려 합니다. 선생님은 1922년 북한산자락 세검정에서 태어나 세검정에서 성장하시고 세검정에서 그림을 그리시다가 이제 세검정에서 세상을 떠나십니다. 세검정은 선생님 영혼의 고향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유년의 뜰은 꿀벌들이 잉잉거리는 화사한 능금 자두 복숭아꽃밭이었습니다. 그 과수원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타는 풍뎅이의 날개짓, 종다리가 흘리는 울음이 좋아 홀로 흙에 누우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 사이 조각난 파란 하늘은 깨어질 듯이 푸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괜히 슬퍼오는 마음을 달래며 형님의 크레용을 가지고 내키는대로 풍정(風情)을 그려본 것이 그림생애의 시작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유년의 뜰을 병상에서 자꾸자꾸 꿈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선생님의 그림 속에는 옛날에 대한 정감의 그리움이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정현웅(鄭玄雄) 이승만(李承萬)으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풍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선생님의 그림을 그냥 지나치곤 했습니다. 순서울사람인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의 서울을 가슴에 품고 사셨습니다. 때문에 시멘트로 덮여가는 서울, 염치없는 사람이 많은 서울, 황량해져가는 서울을 괴로워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언론 출판 미술에 55년을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명리를 뜬구름처럼 생각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생활에 쫓기고 피곤에 지친 나날이었습니다. 3년, 아니 1년만이라도 더 시간이 주어지기를 선생님은 염원하셨습니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신 한국근대풍속회화 작업의 집념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쉬실 때입니다. 모진 풍랑에 시달리다가 가까스로 귀향한 작은 배처럼 말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저의 편집실 문을 들어오고 계십니다. 언제나처럼 단아하고 깔끔하신 모습, 모두들 잘 있으라고 빙긋 웃으십니다. 이제 이 세상에 이우경선생님이 계시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너무너무 쓸쓸해집니다. 하지만 저는 슬퍼하지 않으며, 눈물 흘리지 않으려 참고 참습니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그 유년의 뜰로 돌아가 능금 자두 복숭아꽃을 그리시며 풍뎅이의 날갯짓, 종다리가 흘리는 울음을 즐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정일 동서문화사 발행인>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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