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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言의 세계 몸짓으로 거침없이/극단 미추 ‘뙤약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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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言의 세계 몸짓으로 거침없이/극단 미추 ‘뙤약볕’

입력
1998.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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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의 율법·혼돈 그린 소설가 박상륭의 관념적 작품/연출력과 음악으로 풀어내『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고 법륜(法輪)을 굴리는 사람입니다』. 29년간의 캐나다 이민생활을 훌훌 털고 3월에 영구귀국한 소설가 박상륭(朴常隆·58)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의 고백도 선문답처럼 들리지만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七祖語論)」등 그의 작품은 더욱 난해하다.

「구도적 형이상학」과 「우주적 리얼리즘」을 추구해온 그의 작품은 관념과 추상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극단 미추의 「뙤약볕」(15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은 언어의 난해함을 몸과 음악으로 푸는데 성공했다. 끊어진 말의 자리는 음악과 몸짓이 메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등장·퇴장이 없고 배우가 바뀌지 않아도 섬에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장면이 잘 드러난다. 박호빈씨의 안무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빈 섬에 홀로 남은 점쇠에게 닥친 죽음의 공포 역시 백마디 말보다 시체들의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음악감독 황강록씨는 작품을 음악적으로 재구성하고 연출했다. 섬사람들이 다른 땅을 찾아가 배를 만들 때는 「새마을노래」를 변주하고 미칠 듯한 뙤약볕 역시 신시사이저로 표현하고 있다.

박상륭씨의 연작 3편을 3장의 연극으로 만든 「뙤약볕」은 「말(言語)」을 모시는 섬사람들의 이야기. 말과 사람을 이어주는 당굴과 족장, 이들을 모두 극복하고자 하는 점쇠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이 꼬리를 무는 사건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인간세상의 율법과 혼돈도 그려진다.

에너지와 감정을 넘치도록 담아내는 연출가 김광보씨는 이번엔 절제된 연출로 작품을 다듬었다. 4월 초연 당시의 2시간25분 분량 작품을 40분이나 잘라냈다.

김광보, 박호빈, 황강록과 무대미술 김준섭 씨등 30대 스태프는 작품을 모두 자기식으로 해석했지만 자기 것으로만 만들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만남은 참 행복하다. 전통연희에 능한 미추 배우들은 구수한 만담 한 번 풀어내지 않고도 작품의 의미를 몸짓으로 거침없이 전달했다. 외부에서 젊은 연출가를 데려와 박상륭씨의 작품을 올렸음에도. 찬사는 배우들의 몫이다.<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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