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야간에 정치가 있는가. 없다. 지금 여야는 정치를 하고 있는가. 아니다. 정치를 한다면 상대를 인정하고, 입장을 이해하고, 물러설 때도 있고,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를 하다 보면 여야가 대치하고, 격렬한 선전전을 펼치고, 격돌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금 여야는 상대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접점이 없으니 국민과 민생이 자리할 공간도 없다.지금 정국의 초점은 비리 정치인 사정이다. 물론 여기에도 여야간 접점이 없다. 정치권 개혁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시급하다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로 굳어져 있음을 여야가 다 안다. 정치개혁을 하려면 제도개혁 못지않게 비리 정치인을 청산해야 한다는 점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수사를 놓고 여야가 전혀 딴 소리를 하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란 그런 것이니, 죄가 있어도 적당히 봐주거나, 사정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여러가지 뜻을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여권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측근인 서상목(徐相穆) 의원의 소환조사 방침과 관련해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총재에 대해 『서의원이 국세청을 동원해 선거자금을 거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밝혀라』고 공개질의를 하며 몰아 세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의 사정작업은 야당의원의 여당 입당러시와 맞물려 뭔가 개운치 않은 인상을 줘왔다. 그런 판국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이총재에게만 비수를 들이대면 어떤 반응이 나올 지는 여당이 더 잘 알 것이다.
반대로 야당은 작금의 비리 정치인 사정이 하나같이 야당 압박용 표적사정이라고 보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구속된 전국세청장의 진술로 밝혀진 사실조차 모른체 하며 무조건 비리의혹 의원 보호에 급급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권의 정교하지 못한 사정을 빌미삼아 분명히 드러난 비리의원 처벌마저 막겠다는 심산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닌가.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10일부터 열리는 정기국회가 어떤 식으로 굴러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비리혐의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서 처리를 놓고 여야가 끝없는 입씨름을 벌일 것이다.
여당은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하면 내친 김에 체포동의안을 처리해버릴까 하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동안 야당의 수의 횡포에 눌려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개혁입법을 이 참에 처리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으니까. 그러나 「대여(大與)」가 밀어붙일 경우 그 끝이 어떠했는지는 여당이 더 잘 알 것이다.
야당은 관성적으로 결사항전 태세를 갖출 것이다. 이미 「야당파괴 저지」라는 거창한 임무가 주어진 특위를 발족시켰다. 비리 혐의는 혐의일뿐이고, 그마저도 여당의 무리한 돌파에 묻혀버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쯤되면 결론은 나 있다. 여야가 접점을 찾아야 한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정수사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처지를 헤아려야 한다.
올 정기국회가 어떤 국회인가. 새 정부 출범후 6개월 내내 놀기만 하다가 열리는 국회다. 시급한 정치개혁 경제개혁을 뒷받침하려면 정기국회가 또 헛돌아서는 안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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