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협상 현장 개방,금전관련 추문 등 한번도 없어/경영진도 먼저 고통분담 ‘번개표’ 살리기 노사합심3일 서울 마포구 금호전기 본사. 노사 단체협상이 열렸다. 박영구(朴泳求) 사장과 마주앉은 노조위원장 김광현(金光炫·55)씨는 무려 18년간 위원장을 맡아온 이 회사 직원들의 「대부」. 그에게 이번처럼 고통스런 협상은 없었다. 60년을 전구만들기 외길을 걸어오며 「번개표」의 명성을 쌓아온 기업이지만 경제난국을 비켜가진 못했다. 구조조정이 닥쳐온 것이다.
「3∼6개월분 봉급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는 명예퇴직을 실시한다. 필요시 순환휴직제를 실시한다…」 흔히 뒤따르게 마련인 협상결과에 대한 뒷말은 전혀 없었다. 노사 각 8명씩인 공식 교섭위원 외에도 원하는 노조원은 누구나 협상과정을 지켜보고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위원장은 10여년전 이같은 독특한 협상 방식을 관철시켜 고수해오고 있다. 「중구난방」의 비효율을 부를 것 같은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김위원장은 『투명성이 지켜지면 합의결과나 과정을 두고 잡음이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처럼 노사합의를 노조원들이 투표를 통해 부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28년의 금호전기 생활중 18년을 노조위원장으로 지냈으니 「노동귀족」이라는 비판을 받을만도 하다. 단일직장 노조위원장 18년은 한국노동운동사의 신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큰 형님」이 위원장을 맡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수원공장에 있는 위원장 사무실은 직원 상담실이나 마찬가지다. 돈과 관련된 추문이 나돈 적이 한번도 없다. 10년전 총무과장이 김위원장에게 돈봉투를 안겼다가 되돌려받은 「사건」이 유일하다. 55세가 되는 올해는 김위원장의 정년이다. 5월 노조원 98%가 그를 위원장에 재추대하면서 회사측에 위원장의 정년연장을 요청했다. 「젊은 사람들도 쫓겨나는 마당에 추하게 자리보전할 수 있느냐」는 고민에도 불구하고 김위원장은 이렇게 어려울때 떠나면 어떡하느냐는 후배들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했다. 회사측도 정년연장에 흔쾌히 동의했다. 박사장은 『조합원의 총의를 묶어낼 수 있는 위원장이 있어야 노사관계가 매끄러워진다』며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김위원장이 노조대표로 활동하고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이 이끌어온 금호전기 노조는 「강한 노조」이다. 하지만 파업은 해본 적이 없다. 박사장은 『흑자를 내지 못하고 근로자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경영진은 죄인』이라고 「자백」한다. 그는 회장 사장 부사장은 무보수, 나머지 임원들은 30% 임금삭감이라는 「하향식」고통분담을 먼저 실천했다. 이 회사의 실적회의나 경영전략회의에는 노조간부가 꼭 참석하고 회사의 모든 경영자료는 공개된다. 노사간의 신뢰가 어느 기업보다도 높다.
자본금 2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인 금호전기가 한국에 진출한 세계굴지의 조명회사들을 누르고 55%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나, 번개표 전구식 형광등이 지난달 한국소비자보호원 조사에서 최우수제품으로 평가된 것은 이같은 노사화합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호전기의 모태는 금호그룹이지만 지금은 그룹과 이름만 같을뿐 완전 독립한 별개 기업이다.
『혹시 정치할 생각있는것 아니냐』고 사족을 달자 김위원장은 『그런 것 해서 뭐한답니까』라고 답했다. 김위원장에겐 「IMF체제를 극복한 노조」를 직장생활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싶은게 유일한 욕심이다. 혹독한 불황속에서 「번개표」의 명성을 이어가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금호전기 노사는 IMF시대 노사협력의 귀감이 되고 있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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