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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대란 현실로 다가온다

입력
1998.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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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뇨현상따라 60여개 국가서 홍수·가뭄/경작지 감소와 맞물려 비축식량 사상최저/한국도 자급률 27%불과,남의 일 아니다식량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엘니뇨에 따른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41개국에서 홍수, 22개국에서 가뭄이 발생해 세계 농작물 생산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세계 곡물파동의 우려는 전세계 곡물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아시아에 재해가 집중된데다 12억 중국인구를 먹여살려온 양쯔강유역 대홍수로 더욱 커지고 있다. 집중호우의 여파로 올해 상당량의 쌀생산 감소가 예상되는 우리나라 역시 식량대란의 안전지대가 될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97년 현재 26.7%수준. 70년대 70∼80%대, 80년대 40∼50%대에서 계속 하락세이다. 30.4% 자급률도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식량사정 악화는 곡물 총수요량(2,000만톤)의 70%인 1,400만톤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수석연구원은 『국제 곡물시장은 생산이 1%만 줄어도 가격이 47%가 폭등할 정도로 민감하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중국 쇼크」가 세계 곡물시장에 가져올 파장. 양쯔강 홍수로 세계의 곡창인 중국의 곡물생산량이 30%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세계교역량(연간 2억톤)의 72%에 해당한다. 세계 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12억 중국인구의 식량수급 계획에 차질이 생겨 중국의 곡물수입량이 늘어날 경우 국제곡물시장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농림부는 『중국이 자국 수요량의 15%(약 2,000만톤)를 수입하는 경우 세계 쌀교역량(2,300만톤) 전체와 맞먹어 쌀시장이 대소용돌이에 휘발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이외의 상당수 국가에서도 기상이변과 경제난으로 식량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식량불안이 특정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집중호우에 따른 농산물 가격상승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상추(4㎏)는 지난 4일 7,185원에서 13일 2만6,500원으로 269%올랐고 열무(4㎏)는 1,350에서 4,000원으로 196%, 오이(10㎏)는 1만2,500원에서 2만8,000원으로 124% 상승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는 80년이후 처음으로 심각한 불황과 흉작이 겹치는 해』라며 『9월에 냉해까지 겹치면 피해는 더욱 커질것』이라고 내다봤다.

쌀은 지난 2년간 연속 풍작으로 약 107만톤(745만석)의 재고가 비축돼 당장의 수급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올해 엘니뇨의 영향으로 일조량도 부족하고 병충해와 수해가 겹친데다 농지 감소 등으로 상당량의 쌀생산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올해 쌀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경우 세계 전체의 곡물수급 상황에 직접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내년 이후의 식량수급이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실 최근의 기상이변이 아니더라도 식량 문제는 그동안 줄곧 불안한 조짐을 보여왔다. 무엇보다 경작지 면적이 계속 감소해왔다. 세계적으로 연간 600만㏊(우리나라 총경작지의 3배)에 해당하는 경작 가능한 토지가 사막화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우리나라 경작지도 90년이후 5년간 연평균 3.2%씩 감소했으며 쌀재배면적도 88년을 정점으로 7년간 연평균 3.1%씩 감소했다. 이와함께 인구증가, 수자원의 고갈, 지구의 온난화, 농정개혁의 미흡, 낭비적인 식량 소비구조 등으로 인해 식량위기는 해마다 한걸음씩 다가왔다.

환경감시기구인 월드워치연구소는 올해 세계의 곡물비축량이 사상 최저치인 48일분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92∼93년 평균 비축량(81일분)의 60%수준. 월드워치측은 최소 70일분이 유지돼야 식량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세계곡물 재고가 최소안전수준(17%)에 크게 미달하는 15%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식량난은 정치적 문제이자, 국가안보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식량수출국들이 곡물을 외교 및 통상분야의 유력한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입국 입장에서는 식량난이 국민의 생존권 및 국가존립의 문제와 직결된다. 식량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날로 깊어질 것이므로 식량위기에 대비,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과의 통일에 따른 식량안보 대책 마련도 시급한 일이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정예모 수석연구원은 『곡물별로 구체적인 자급목표를 세우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농업구조의 개선, 농지제도, 농업인력의 양성, 농지보전 등 제반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명환 수석연구원은 『스웨덴 등에서는 매년 1월1일 그해 수요량의 절반정도를 정부가 비축토록 하고 있다』며 『곡물비축 목표량을 정하고 이에 미달하면 자동 수입하는 등 체계적인 비축정책을 펴야한다』고 주장했다.<남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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