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SK그룹회장의 유언은 우리 장묘문화를 크게 개선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여간 반갑지 않다. 26일 타계한 최회장은 가족과 그룹 경영진에게 자신을 화장할뿐 아니라 훌륭한 화장터를 만들어 사회에 기증해서 장묘문화 개선에 앞장서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경제인으로서 우리 문화와 국토이용 사정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준 값진 예라고 생각된다. 유족들은 최회장과 지난해 별세한 부인의 유해를 함께 화장한 후 가족묘지 납골당에 합봉할 것이라고 한다.그의 유언이 사회지도층에 상당한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최회장의 빈소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구자경 LG그룹명예회장은 『SK가 화장터를 만든다면 나도 그곳을 이용하겠다』고 약속했고,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고건 서울시장도 『SK의 화장 장려운동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지금까지 장묘문화 개선에 큰 걸림돌이 돼 왔던 것 중의 하나가 사회지도층의 호화분묘 조성이었다. 최회장의 유언을 계기로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장례문화 개선에 나선다면 국민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수도권 일대에 내린 집중폭우로 서울 근교의 시립묘지와 공원묘지의 분묘 9,000여기가 유실되거나 파손되어 유족들이 지금까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를 계기로 장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자신은 화장을 하겠다는 서명운동에 고건시장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93년에 26.4%이던 화장률이 최근에는 30% 이상으로 늘어났으나, 일본의 97%, 태국의 90%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몇년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급하고 있는 한국형 가족묘는 하나의 봉분안에 12기의 유골함을 안치할 수 있는 형태인데, 묘지면적을 줄일 수 있는 서구형 평장제(平葬制)와 함께 국민의 반응이 좋아 기대를 걸 만하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최근 시민단체가 공개한 호화결혼식의 예를 보면 국회의원 장관 교육자등이 자녀결혼에 수천명의 하객을 불러모은 것으로 드러났고, 자녀를 수천만원짜리 비밀과외에 보낸 학부모 명단에는 서울대총장까지 포함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겉으로는 개혁을 주장하면서 자기일에서는 이처럼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지도층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한 우리 사회가 개선되기는 어렵다.
재벌기업 총수의 가족묘지가 납골당형태로 조성된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장묘문화를 뛰어넘는 것이다. 최종현 회장의 유언이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을 자극하는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