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책상 내리치며 “환율 못올려”/96년 11월부터 재경원 “환율방치 큰일난다” 주장/청와대한은 번번이 제동 李 수석 재임땐 ‘요지부동’/외환위기 우려 커지자 97년 3월 뒤늦게 개입나서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97년 2월초 청와대 경제수석실. 이석채(李錫采) 경제수석을 필두로 한 청와대 경제팀과 재정경제원 간부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윤증현(尹增鉉) 재경원 금융정책실장(현 세무대학장)이 말을 꺼냈다. 『환율을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됩니다. 무역적자는 쌓여만 가는데 환율은 요지부동입니다. 환율(미 달러대비)을 대폭 끌어올려야 살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환율에 손대는 것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외환)시장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청와대측이 도와주십시요』 윤실장의 목소리는 사뭇 비장했다.
윤실장을 수행한 김석동(金錫東) 외화자금과장(현 재경부 경제분석과장)이 곧바로 지원사격을 했다. 『일시적으로라도 환율 변동폭을 확대해 환율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역적자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사들일 준비는 돼 있습니다. 환율을 한번 올려놓으면 무역적자는 빠른시간내에 크게 줄어들 것으로 자신합니다』
이들 재경원팀은 청와대 행에 앞서 한승수(韓昇洙) 경제부총리겸 재경원장관으로 부터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재가를 얻어놓은 터라 청와대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산된다.
『무역적자문제를 환율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아닙니까. 환율을 올리면 물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업들의 외채가 그만큼 늘어나고 환차손이 급증하는 문제는 누가 해결해줍니까. 기업들이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환율이 올라가는데 따른 수출증가에 안주하게 될 우려도 큽니다. 없었던 일로 합시다』 이석채 수석의 대응은 단호했다. 이 수석은 재경원팀의 반론이 이어지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96년말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관계와 학계, 재계를 강타했던 환율논쟁. 결국은 청와대와 한국은행, 일부 학자들의 반대와 저항에 밀려 「환율조정을 통한 경제위기 넘기」는 햇빛을 보지 못했다.
만일 환율을 지난해초부터 큰 폭으로 올려 무역적자를 줄이고 수입품 가격을 높혀 과소비를 억제했었다면 우리경제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이미 93년부터 3년간 300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적자가 쌓이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비중이 60%(지난해 1월말 기준)에 육박했기 때문에 환율을 대폭 올렸어도 외환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와중에서도 환율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꾸어온 달러자금 덕분에 4년동안(93∼96년)이나 요지부동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환율정책의 실패가 환란(換亂)을 재촉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찰은 지난 6월 외환위기수사를 종결하면서 발표한 수사결과에서도 잘못된 환율정책이 경제위기를 불러온 원인중 하나라고 명시하고 있다.
환율논쟁은 경상흑자가 최고조에 달한 96년말에 가서야 싹을 트기 시작했다 . 당시 재경원의 국제금융파트에서 일했던 인사의 증언. 『96년11월께 부터 재경원내에서는 환율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큰 일난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석에서는 외환위기에 대한 걱정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재경원 일각에서는 환율을 단번에 올리기 위한 작전을 짜기도 했지만 청와대측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재경원 국제금융팀은 당시 달러 대비 820원수준이었던 환율을 단시일내에 900원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거사(擧事)를 계획했다.
당시 이 계획에 가담했던 인사의 증언. 『환율을 올릴 경우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었습니다. 때문에 금융정책실 몇몇 핵심멤버들의 주도로 96년 주식시장이 폐장된 다음달부터 말일까지 3일동안 집중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원·달러환율을 900원까지 높이기로 하고 청와대측과의 조율을 시작했지요』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시작도 하기 전에 수포로 돌아간다. 한승수 부총리와 임창렬(林昌烈) 재경원차관(현 경기도지사)이 당시 막강한 실세였던 이석채수석을 만나 「환율 현실화론」을 주장했으나, 이 수석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좌초되고 만다. 이경식(李經植) 한국은행총재도 국내외 토론회와 세미나에서 『현재 환율이 적정하다』고 주장, 청와대측을 거들었다.
97년 들어서는 차동세(車東世) 한국개발연구원장 등의 일부 연구기관장과 학자들이 『원·달러 환율을 단번에 1,000원까지 올려야 살아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나, 청와대 한국은행 연합세력과 재경원간의 「환율전쟁」은 연합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곤 했다.
그렇다면 양측 가운데 어느쪽의 주장이 옳았을까. 당시 통상산업부에서 수출부문을 담당했던 인사의 회고를 들어보자. 『94년의 평균 원·달러환율은 803원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95년들어 한해동안 경상수지적자가 80억달러를 넘었는데도 연평균 환율은 771원으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경상적자가 237억달러로 급증한 96년에는 환율이 804원으로 94년도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환율정책이 완전 실패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적자는 쌓여 빚은 늘어가는데 구조조정도 제대로 못하고 환율을 움직여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도 못한 것이지요』 그의 말대로 경상흑자는 해마다 늘어나 외채는 급증하고 있는데도 원화가치는 요지부동인 이상현상이 계속된 셈이다.
과연 청와대측 주장대로 「원화 평가절하 불가론」은 물가상승과 구조조정 지연을 우려한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환율논쟁이 한창이던 97년초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일했던 인사의 증언은 이 주장에 찬물을 끼얹는다. 『97년 1월 느닷없이 한보사건이 터져나오고 국가신인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기 시작했지요.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같은 상황이 하락국면에 있던 경기를 더 위축시켜 성장률과 국민소득을 동시에 떨어뜨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때문에 청와대 핵심부는 환율을 올릴 경우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95, 96년 2년간 달성)의 신화가 깨질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압니다』
이 때문이었을까. 이석채수석이 재임하는 기간동안 환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석채수석이 한보사건으로 퇴장하고 강경식(姜慶植)경제부총리김인호(金仁浩) 경제수석체제가 자리잡은 97년3월부터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시작된다. 여전히 학계와 한국은행 등에서 환율올리기에 대한 반대의견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시장개입은 어려웠고, 호가를 높여 하루에 수백만달러 정도를 내다파는 부분적인 개입에 머물렀다.
그나마 이 덕분에 3월이후 원·달러환율은 900원대에 육박하기 시작했고, 매월 30억달러를 넘나들던 경상적자폭은 10억달러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경제정책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결과만으로 잘잘못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97년초에는 이미 정부내에서도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될 만큼 상황이 긴박해지기 시작했는데도 청와대는 환율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저의를 알 수가 없습니다』 환율논쟁을 줄곧 지켜본 경제부처 관계자의 증언이다. 그의 말대로 환율논쟁과 외환위기의 상관관계는 아직도 풀어야 한 숙제로 남아있다.<김동영 기자>김동영>
◎검찰이 밝혀낸 정책 失機/원화 평가절하 잇단 무시/변동폭 폐지도 한발 늦어/대외 신인도 급속 추락만
외환위기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를 살펴보면 문민정부 들어 지속돼 온 환율정책의 부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검찰은 6월5일 「외환위기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전 청와대경제수석을 구속했다.
검찰은 145쪽짜리 수사자료를 통해 『94년 이후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 나면서 96년에는 경상적자규모가 237억달러에 달해 원화의 평가절하가 필요했으나 이를 방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개발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소와 민간경제연구소 등이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환율절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으나 물가상승, 대외채무원리금 상환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일일환율변동폭 폐지 등을 통한 환율실세화에 실패했고 외환위기가 심화된 지난해 11월7일에야 변동폭을 없앴으나 이미 늦었다』고 정책이 실기했음을 밝혔다.
잘못된 환율정책은 외환위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검찰은 이와 관련, 『외환시장개입 중단으로 야기될 결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지난해 10월28일 (강 전부총리가) 한국은행 총재에게 외환시장개입 중단을 지시했다』면서 『이 지시로 외환시장 거래가 중단돼 시장불안심리가 확산됐고 외환보유고 고갈로 환율방어를 포기한 것으로 인식돼 대외신인도가 급속하게 추락했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빗나간 환율정책이 외환위기를 촉발한 주요 원인중 하나라고 단정지은 것이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아시아 금융시장의 불안감 확산 등으로 제2의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가고 있는 요즈음, 문민정부의 실패한 환율정책이 다시 경고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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