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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과 實이 다른 사회/임철순 부국장 겸 문화과학부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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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과 實이 다른 사회/임철순 부국장 겸 문화과학부장(메아리)

입력
1998.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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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달라 처신하고 적응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지켜지지 않는 법과 제도에 시달리고, 안 지키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노력하면 정당한 보상을 받고 줄서서 기다리면 차례가 온다는 믿음을 쌓지 못한채 서로를 못 살게 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모습이다.10여년 전부터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을 해왔지만 오늘의 상황은 총체적 난국의 누적된 결과이다. 총체적 난국의 본질은 신뢰의 붕괴이다. 국민이 정부와 행정을 믿지 못하고 개인간의 거래와 교류에서도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경험이 누적되다 보니 명(名)과 실(實)이 다른 사회를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됐다.

우선 정부부터 명분과 실제가 다른 행정을 펴고 있다. 『범법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없이 엄단하겠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다짐이었다. 하지만 지위고하는 언제나 철저히 논해져 왔으며 성역은 분명히 상존한다. 최근에도 정부는 현대자동차문제를 정치적으로 봉합해 놓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정리해고 거부자들의 파업행위에 대한 엄단방침과 분규 불개입원칙을 다시 밝혔다. 정부와 행정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일이었다.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명분마저 수시로 변하거나 원상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되풀이돼왔다. 심야영업시간 연장문제는 관광진흥의 필요에 따라, 또는 치안강화의 필요에 따라 바뀌었다. 최근 발표된 카지노정책도 자주 변한 사례이다. 그런 와중에 업계, 협회와 공무원들의 유착과 비리가 생기고 국민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규제개혁위원회가 118개 협회등 각종 사업자단체의 회원에 대한 징계권을 정부에 환수키로 한 것도 배경은 이해되지만 그 방법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당초 민간에 업무를 위탁한 이유가 규제개혁의 차원이었으니 취지는 같지만 명분은 일변한 셈이다. 이 문제는 이미 김영삼(金泳三)정부때 개혁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혀 유야무야된 사안이었다. 각 협회가 돈과 표를 내세워 로비를 할 경우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실패한다면 신뢰는 더욱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잘못된 관행이나 악습이 재빨리 복원된다. 나쁜 짓을 해도 매장되지 않는다. 대입부정으로 지탄을 받았던 예능계 교수들이 어느새 과거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리와 부정혐의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박해받은 민주투사처럼 행동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의 준법은 그 의미가 다르다. 버스·택시노조의 준법투쟁이란 규정속도를 지켜 운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고 그 게으름은 평소의 활동이 준법상태가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근대화의 성공모델이었던 한국이 IMF시대를 졸업하고 선진화로 이행하려면 명실이 상부한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각 부문에서 민주적 질서에 입각한 새로운 권위가 창출되고 유지돼야 한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88년 취임당시 「보통사람의 시대」를 선언하고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러더니 가방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그런 가방 수백개가 있어야 담을만한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사실이 퇴임후 드러났다. 그는 하지 않느니만 못한 언동으로 국가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뜨렸다. 링컨대통령이 구두를 닦는 것을 본 비서관이 『왜 직접 닦으십니까』하고 묻자 『나는 그럼 누구 구두를 닦아야 하나』하고 반문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반드시 자신의 구두를 닦을 필요는 없지만 그런 자세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달라져야 하고 정부의 정책수립과 추진·적용과정은 한결같아야 한다. 불신과 의심 없이 성실하게만 살아도 손해보지 않는 사회가 살만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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