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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채권자의 권리/金正浩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한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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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채권자의 권리/金正浩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한국시론)

입력
1998.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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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법정관리 판단 勞使 구제 여부가 아닌 채권자 권리가 기준돼야”갚기로 하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 그것은 도덕률이자 풍요로운 삶의 기초이기도 하다. 빌린 돈을 안갚아도 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해보자. 그러면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데에 따른 위험이 커져, 투자의 수익률은 떨어질 것이고 저축하려는 인센티브는 줄어들 것이다. 높은 소득은 많은 자본이 축적된 결과이다. 저축이 줄어들면 자본축적이 둔화되고, 그 결과 소득도 낮아진다.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빌려준 돈을 회수할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채권자들의 개별적 채권회수를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제3자인 정부(법원)가 일시적으로 개별적인 채권의 회수를 중지시키는 것이 채권자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가 있다. 갚아야 할 돈이 갚을 수 있는 돈보다 많고, 채권자의 숫자가 여러 명일 경우가 그 중 하나이다. 채무자가 부도를 내면 채권자들은 토지나 건물, 기계, 지적소유권, 재고품 등을 처분하여 채권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기업의 가치가 그처럼 개별적 처분이 가능한 재산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금융기관이나 거래처들에 대한 신용, 직원들의 기강 등은 그것만을 따로 처분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가치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재산들이다. 개별적인 채권회수가 허용된다면 그런 재산들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만다. 이럴 때, 정부가 개입하여 개별적 채권회수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킨 후, 기업을 일괄매각하고 그 대금을 채권자들에게 분배한다면 더 많은 채권자들이 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파산제도의 본래 취지이다.

채무자인 기업의 재산을 해체하는 것보다 기업을 계속 경영해서 나오는 수입으로 빚을 갚게 하는 것이 더 많은 채권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정부(법원)가 채권의 회수를 중지시킨 후 기업의 경영을 계속하면서 빚을 갚게 한다면 담보가 없는 후순위 채권자들까지도 채권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법정관리나 화의제도의 본래 취지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개별 채권자들, 특히 담보를 가지고 있는 채권자들로서는 기업이 해체되더라도 담보물을 처분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처럼 파산제도나 화의, 법정관리 등 개별적 채권행사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제도들의 건전성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기준은 그것을 통해서 더 많은 채권자들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그것 이외의 어떠한 것도 채권자들의 권리행사를 중지시키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퇴출관련 제도들은 이같은 제도 본래 목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소위 워크아웃이라 불리는 기업회생제도, 화의, 법정관리 등의 제도들은 채권자의 권리보호보다는 채무자인 기업이나 종업원을 살리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하나의 기업이 망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투자자들은 돈을 잃고 종업원들은 직장을 잃는다. 하지만 당면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곤경에 처한 기업을 인위적으로 살리려 한다면 효율적인 기업들로의 자금통로가 막혀 더 큰 고통이 오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기업이 창업되고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채권자의 권리보호는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었던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도 절실하다. 약속한 날짜에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금융기관이 부실화를 면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수십조원의 자금을 투입하여 은행과 기업의 부실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것으로 이번 사태를 넘길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채권자의 권리훼손이 계속된다면 금융기관의 부실화 문제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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