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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야 다시 선다/趙潤濟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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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야 다시 선다/趙潤濟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논단)

입력
1998.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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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는 한 나라의 경제운영방식과 제도 및 질서가 더 이상 그 나라 경제상황에 적합하지 않을 때 시장이 주도하는 반란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시장질서와 관행, 그리고 제도가 정착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개혁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항상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경제위기가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지는지 혹은 악순환의 굴레로 이어지는지는 이러한 시장의 도전에 대해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응전하는가에 달려 있다.우리가 지금 맞고 있는 경제위기도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다시 모래성을 쌓을 수도 있고 새로운 경제구조를 정착시킬 수도 있다. 우려되는 점은 우리 주위에서 벌써 구조조정을 마무리 짓고 경기부양을 서두르려는 경향이 보인다는 것이다. 환율과 금리가 안정됨에 따라 마치 경제위기의 고비를 넘긴 것으로 생각하고 몇 몇 은행의 퇴출로 곧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외자유치만 잘하면 경제회복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경제 위기 해결의 핵심은 내부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기업·금융구조조정등의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해 나갈 때 외자는 자연히 유입되는 것이지 우리가 나쁜 조건을 받아들이며 억지로 외자를 유치한다고 해서 우리경제에 필요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의 총 부채는 현재 약1,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외자유치는 아마도 1년에 200억달러를 넘기 힘들 것이다. 만약 그 이상을 넘는다고 해도 통화관리에 부담을 주어 곤란하다. 그러나 200억달러라고 해야 고작 25조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위기 극복의 초점은 우리 내부에서의 구조조정, 즉 기업부채의 출자전환을 통한 과다부채구조개선과 동시에 금융부문의 부실을 해결해 내고 이 모든 것을 초래하게 된 경제내부의 제도적 모순을 개선하는데에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 내부의 여건으로 보나 우리를 둘러싼 외부여건으로 보나 당분간 우리경제는 침체를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있다. 우리와 같이 외환위기를 맞은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금년에 마이너스 10%를 넘는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고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도 지금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아시아경제의 침체는 오래 지속될 전망이다. 우리가 지금 재정팽창을 통해 경기부양을 하려하는 것은 실효를 기대하기 힘든 반면 경상수지흑자를 줄이고 장래 재정적자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정책방향의 혼선을 초래하여 대기업들에 이 위기만 적당히 넘기면 된다는 안일감만 줄뿐이다. 지금 정부가 얘기하는대로 우리는 시장경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러나 도대체 기업부채비율이 600%가 넘는 나라에서 어떻게 시장경제가 가능하겠는가? 국제적 신용평가기준을 적용할 때 돈을 빌려줄 기업이 없는 경제를 어떻게 국제화하겠는가? 대기업 재무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우리경제의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대기업 과다부채의 출자전환은 오직 그들이 벼랑끝의 절박감에 몰려 스스로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하게 된다. 정부가 그들의 팔을 비틀어 구조조정의 시늉을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만약 여기서 적당히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고 경기부양을 하려 든다면 이번 위기는 우리에게 국가적 수치심과 실업의 고통만을 주었을 뿐 새로운 도약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철저히 무너져야 다시 설 수 있다.<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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