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영향력 확대 의원관료화 막아야”/“정치개혁 1순위는 국회운영제도”/“정치자금 실명화로 부패 뿌리 근절을”/“1인지배·지역주의 극복 근본노력부터”/“선거인플레 막게 차점자 당선 고려할때”/“행정부 정책심의기능 국회서 되찾아야”/“지나친 의원수 감축은 입법부 영향 감소”/“교섭단체 인원줄이면 정당다원화 도움”□사회=김광웅 서울대 교수
□참석자:김근태 국민회의 의원
이태섭 자민련 의원
김중위 한나라당 의원
안병만 한국외국어대 교수
임성호 경희대 교수
유종성 경실련 사무총장
■김근태 의원=의원들에게 최대 문제는 공천권과 돈입니다. 재야시절에는 돈을 초월하고, 몸으로 때울 수가 있었습니다. 2년전까지 후배가 빌려준 엘란트라를 타고 다녔는데, 호텔에서 다른 차 다 빠지고 늦게 나올 때는 모욕감도 느끼고 후배들이 바꾸라고 해서 차를 바꿨습니다. 돈으로 표를 사는 일은 없으나 회식비 등에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이 돈의 노예가 됩니다. 200만∼300만원 하는 돈에 대가성이 없을 수 없습니다.
공천권의 경우 수도권 의원들도 정도는 덜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원들의 관료화는 더 큰 문제입니다. 자유로운 의견과 민주적 가치의 교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정치인과 학계, 시민단체들간에 비판적 동맹관계를 기대합니다. 이들의 분투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전파하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힘이 없으면 정치를 살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답을 모르는게 아닙니다. 그 실현을 위한 힘이 집적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금융위기를 맞은 것은 효율성을 상실한 개발독재 시스템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회생해서 경제의 경쟁력, 실효성, 공정력을 담보해주지 못하면 우리는 굉장한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선거제도와 관련해서는, 중선거제로 하자는데 이견이 있습니다.
■이태섭 의원=헌정 50년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제일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정치인」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현 소선거구제도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나 죽고살기식이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습니다. 선거부정을 유발하고 불신을 야기합니다. 9∼12대 중선거구제에서 처럼 극단적 과열을 피하는 중대선거구제 도입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합니다. 매년 선거가 실시되고 수시로 재·보선 선거가 열리는 선거 인플레이션도 타파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좋지 않은 모습이 노출돼 국민들의 혐오감과 불신감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중앙과 지방선거를 한번에 치르고 보선 대신에 낭비 방지 차원에서 차점자 당선 방식을 고려해볼 만합니다.
지난 50년은 대통령제와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였습니다. 절대권력의 오만과 독선이 빚어낸 것이었습니다. 내각제는 지금 검토해야 합니다. 책임정치 구현의 차원에서 정치개혁의 종착역은 내각제입니다.
■김중위 의원=알고 죽는게 해소병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공천과 돈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 정치문화는 해방후 군왕적 대통령제로 시작됐고 군사문화가 더해졌습니다. 이 두개의 큰 흐름이 왜곡, 발전하다 보니 정당도 군왕적 1인 지배체제가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5·16이후 여당은 군왕적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외곽단체로, 야당은 저항·투쟁을 위해 그 내부에서 1인 지배체제로 치달았고 결국 지역패권주의가 오늘의 정당 형국이 됐습니다.
현재 DJP연합세력인 여권도 두 사람이 지배하는 정당으로 돼 있고, 야당도 그와 유사한 각종 연합세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또 호남·충청, 영남의 지역패권주의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여권의 정치개혁을 보면 이런 내재하는 모순과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참여민주니 정당명부제니 하는 지엽적 문제만 얘기합니다. 1인 지배와 지역주의 극복의 틀을 탈피하기 위한 종합적 노력을 기울여야지 다른 무슨 이야기로는 정치개혁이 힘듭니다.
■안병만 교수=금융위기의 큰 이유로 외국인들은 아시아의 권위·관치주의 문화를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맥·혈맥·지맥으로 뭉친 사회구조가 가족주의와 어울려 너무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일처리가 불공정해지고 정치와 기업에 부패가 만연해졌습니다. 최근 한 외국기관의 조사결과 우리나라의 투명성은 전체 52개국중 37위였습니다. 부패를 벗어나려면 계속 위에서 다스려야 합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황당한게 사면입니다. 기준이 없습니다. 부패해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다시 나왔습니다. 『당장 돈이 급하니까 우선 먹고 보자』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부패한 사람이 사면되면 절대 안된다는 것을 정부가 보여줘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부정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국민들의 정치사회화 교육이 유아시절부터 필요합니다.
내각제 문제는 86년 5공화국이 내각제를 실시하려 할 때 한 여론조사 결과 찬성이 22·3%였는데 10년이 더 지난 최근 한 여론조사의 찬성률도 23%를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사회에 군왕제적 정치문화가 내재해 있어 내각제를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도와 문화는 병행하는 것인데, 제도가 따로 가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유종성 사무총장=국회가 지난 연말부터 한 일이 조금 있는데 잘 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개혁에 역행한 경우만 몇 건 있습니다. 국회는 정부조직개편을 용두사미로 만들었습니다. 세법 중 정부의 전문직 부가세 부과안도 빼먹었습니다. 금융실명제 종합과세도 유보했습니다.
지난 연말 금융위기가 마치 금융실명제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하자금을 끌어들여 실업대책기금으로 1조6,000억원의 무기명 장기채권을 발행하려던 계획이 실패한 걸 봐도 의원들은 거짓말한 것입니다. 일반 국민중 종합과세 대상은 3만명에 불과한데 의원들은 4명 중 한명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체제 문제도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이 없었다면 관치금융이 그대로 계속됐을 것입니다.
선거자금은 법정선거비용이라는 걸로 제한받고 있는데, 의미가 없습니다. 정당활동비를 포함해 선거비용이 적어도 6개월간 총괄규제되지 않으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입니다. 바자회나 서화전에서 영수증 교환도 없이 무제한적으로 정치자금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위해서는 선관위에 계좌를 개설해 여기서만 입출금이 이뤄지도록 정치자금이 실명화돼야 합니다.
■임성호 교수=우리 정당은 지금 정책차별성을 찾기 어려운 구조에 처해있습니다. 우선 의원들이 정책분야에 몰두할 인센티브가 적어요. 사회집단이 복잡다단화함에 따라, 정당의 정책개발 기능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지역패권주의가 유일한 정치적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정치 이면에는 이런 구조적 특징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만병통치약으로서의 정치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정치권도 개혁슬로건을 남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경우 국민의 기대수준을 상승시켜, 종국에는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만 키울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한 후에 정치개혁에 임해야 합니다. 종합적으로 한꺼번에 개혁하려 할 경우 정파간 갈등이 커질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개혁의 우선순위는 국회운영제도에 맞춰져야 합니다. 우선 행정부의 정책 심의기능을 정치권이 다시 찾아야 합니다. 또 의원 각자가 정책개발의 주역이 돼야 합니다. 사회 일각에서 국회 무용론이 대두하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회를 회생시켜서 권력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행정부의 독주를 조장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일하는 정치인 상(像)을 정립하기 위해서 행정부의 법안제출권을 제한하고 의원들의 법안발의권을 강화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입법에 관한한 의회가 주체임을 알리는 상징성과 함께, 의원들에겐 참여인센티브를 줄 수 있습니다. 행정부처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데 입법부가 거부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위상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나친 의원수 삭감은 행정부에 비해서 입법부의 영향력을 감소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꺼번에 모든 제도를 변혁하는데는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국회운영제도 개혁을 먼저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중위 의원=정치개혁 5개년 계획을 세우는 방안을 제의합니다. 여기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어떤 과제를 선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당구조 개혁과, 1인지배체제, 지역패권주의등 본질적인 문제부터 능률성과 민주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의회구조, 고비용정치구조타파, 지방자치문제 등을 과제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2의 건국」이라는 표현은 적절한 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와중에서 나온 개념이 참여민주주의 강화인 것같은데, 이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대의민주주의는 설땅이 없어집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우리의 정치문화, 정당구조, 권력구조에서 적절한 것인가의 문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당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지, 한두 사람의 의견이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정치자금 정치구조 일체를 조금이라도 고치려면 중대선거구제로 가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이태섭 의원=지난해 대선을 전후해서는 50%이상이 내각제를 지지했습니다. (안교수가) 최근 내각제 지지도가 23%라고 했는데, 얼마전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선 28%였습니다. 소위의 속기록을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속기사 신규채용등 현실적으로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행정부의 입법권을 제한하자는 제안은 좋습니다. 국회에 제출되는 법안 대부분이 행정부에서 나온 것입니다. 의원들이 입법을 많이 하지만 통과율은 미미합니다. 의원수를 대폭 삭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민적 여론을 감안해 감축이 불가피한데, 10%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경우 독일식으로 할 지, 일본식으로 할 지 상당한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김근태 의원=투명성의 문제가 강조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돈(정치자금) 문제가 해결돼야죠. 국고보조금이나 검은돈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감사원을 입법부에 두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헌법개정이 필요해 어려워 보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원을 입법부 관할에 두면 행정부의 독주와 관료들의 부패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예비경선제를 선택하는 지구당에는 인센티브를 줘야한다.
■박동서 교수=정당의 지역연합은 전근대적 발상입니다. 이념 정책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과거식으로 양대 정당구조는 힘들 것입니다. 정책과 이념에 따라 정당이 다원화할 전망인데, 비슷하면 연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섭단체 인원수를 줄여야 합니다. 지역연합으로 나가면 역기능과 부작용이 많다고 생각합니다.<정리=김병찬·이영섭·김성호 기자>정리=김병찬·이영섭·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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