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한 금융회사는 인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미국 최초로 석유가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스무살짜리 경리사원을 보내 투자가치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 청년은 「상업성이 별로 없음」이라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 당시 석유는 등유와 약품으로 쓰이는 정도였다. 그러나 청년의 본심은 달랐던 것같다. 얼마후 그는 석유가 등유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동력원이 되지않을까 생각하고 친구와 함께 석유에 투자했다. 그의 이름은 존 록펠러였다.120여년후 워싱턴주 산골도시 레드먼드에서 대학을 중퇴한 한 청년이 친구와 함께 하이테크회사를 창업한다고 집 창고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즈음 세계최대의 컴퓨터회사 IBM은 개인용컴퓨터(PC)개발을 위해 구매담당 간부로 하여금 운영프로그램을 구하도록 했다. 간부는 그 청년을 찾아가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프로그램이 없었지만 그날 밤 다른 사람으로부터 프로그램을 구해 이름을 도스(DOS)라 정하고 납품계약을 했다. 그의 이름은 빌 게이츠였다.
이 일화들이 어느 정도 정확한지는 몰라도 두 사람의 「아메리칸 드림」실현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우선 기회를 잡는 방법이 극적이었고, 삽시간에 사업이 꽃핀 것도 비슷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석유는 자동차와 기계문명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도 컴퓨터혁명으로 전세계를 석권했다. 너무 빨리 성장하면서 경쟁기업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다가 독점금지법 위반혐의로 기소됐던 것까지 비슷하다.
빌 게이츠의 재산이 100억달러를 넘을때 미국 언론은 그를 제2의 록펠러라고 불렀다. 경제잡지인 포브스 8월호는 역사상 미국부자의 순위를 매겼는데, 록펠러가 1위, 게이츠가 6위에 올랐다. 기준은 GNP중 그들의 재산을 백분화한 것인데 록펠러가 1.53%, 게이츠가 0.58%다. 그러나 게이츠의 재산은 주식시세변동에 따라 록펠러의 재산만큼 불었다 줄었다 한다. 순위는 기준에 따라 바뀌는 법, 이들의 순위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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