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아사태:上(문민정부 5년:48)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아사태:上(문민정부 5년:48)

입력
1998.08.15 00:00
0 0

◎‘삼성보고서’ 파문후 “기아끝났다” 루머/금융권 무차별 여신회수 나서 하루하루가 위기상황/김선홍 선처호소에 강경식 “특정기업 도와주기 힘들다”/97년 7월초 경제수석실 회의서 ‘부도유예’ 최종결정97년 7월초 청와대 경제수석실. 김인호(金仁浩) 경제수석 강만수(姜萬洙) 재정경제원차관 류시열(柳時烈) 제일은행장 김진표(金振杓) 재경원은행보험심의관 이호근(李好根) 제일은행이사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모두 침울한 표정이었다. 얼마후 이들 입에선 「부도유예」 「기아」 같은 단어가 낮은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자산기준 재계 8위, 부채규모 9조4,000억원대의 거대그룹 기아에 대한 부도유예협약 적용방침이 최종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뒤인 7월15일 낮 한국은행 기자실. 『기아그룹 28개 계열사 가운데 18개 기업을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으로 결정했습니다』 권우하(權禹夏) 제일은행상무가 담담한 표정으로 발표문을 읽어내려갔다. 권상무는 『부도유예협약 대상 지정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여러번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는 기아의 몰락을 공식화하는 선언이자 한국경제의 비참한 추락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다음날 주식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는 15.33포인트가 떨어졌고, 회사채거래는 거의 끊기다시피했으며, 국내기업들이 발행한 변동금리부채권(FRN) 등 해외채권수익률이 평균 0.02∼0.10%포인트 떨어졌다. 이때부터 대기업 연쇄부도와 외환위기의 먹구름이 순식간에 한국경제를 휘감기 시작했다.

이날 발표는 또 기아와 채권금융기관, 그리고 정부와의 지루한 줄다리기의 출발신호이기도 했다. 류행장은 이날 정부측과의 사전협의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후 통보는 했다』고만 밝혔다. 기아그룹의 위기에는 정부와 삼성의 커넥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이후 기아그룹이 법정관리로 진로를 잡을 때까지의 사태전개과정은 류행장이 염려했던 그대로였다.

7월15일 이전부터 금융권에서는 기아의 몰락이 이미 예견되고 있었다. 채권은행 고위관계자의 회고. 『연초부터 자금상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6월중순부터는 거의 매일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2,000억원까지 2금융권으로부터 어음이 교환에 회부됐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증언. 『7월3일인가 기아그룹 채권은행장 회의가 극비리에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도처리되나보다 각오를 하고 참석했는데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측에서 부도유예 이야기를 꺼내길래 내심 놀랐습니다』 이처럼 채권은행측에서는 이미 6월하순 들어서는 기아의 몰락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김선홍(金善弘) 기아그룹 회장을 비롯한 기아 경영진은 파국을 막기 위해 막바지까지 정부와 채권은행단에 매달렸다. 김회장은 6월23일 재경원을 방문, 강경식(姜慶植) 부총리를 만났다. 『종합금융사들이 무차별적으로 어음을 돌리고 있습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특정기업을 도와주기는 힘든 일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겉돌았다.

김회장은 제일은행에도 두차례나 찾아가 「선처」를 호소했다. 『김회장님, 도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조금만 더 도와주면 고비를 넘길 수 있습니다』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4월이후 3개월여 동안 기아그룹이 2금융권에 갚아야 했던 돈은 무려 1조원. 이같은 여신회수공세에 맞닥뜨린 상황에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기아는 왜 이처럼 집중적으로 자금을 회수당했을까. 기아그룹 관계자들은 『물증은 없지만 S그룹과 관련이 있는 2금융권기관이 자금회수에 앞장섰다는 의심을 지울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기아그룹에 대해 4,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줬다가 부실여신의 책임을 지고 97년 10월 직장을 떠난 C종금사 김모차장의 회고. 『96년말까지만 해도 기아그룹에 대출을 못해주면 무능한 직원이었습니다. 기아가 망할리는 없다는 생각에 아쉬운 소리 해가며 돈을 빌려줄 정도였죠. 1월25일 한보그룹이 부도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표 안나게 대출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죠』 (C종금사는 결국 기아여신의 짐을 벗지 못하고 폐쇄됐고, 김차장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C종금사 김차장만 이같은 생각을 했을리가 없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외환상환 압박으로 자금사정이 쪼들리게 되자 결국 금융기관들의 자금회수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가속이 붙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종합금융협회 관계자의 말. 『종금사들이 교환에 돌린 CP중에는 은행 신탁계정이 보유하고 있던 물량이 적지 않았습니다』 여신 회수경쟁은 2금융권 뿐 아니라 전 금융권의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한보의 쇼크가 이처럼 기아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에 대한 여신회수로 이어지고 있을 즈음, 비틀거리는 기아에 커다란 타격이 또 한차례 가해 졌다. 「삼성보고서」 파문이었다. 5월21일자 서울경제신문은 삼성자동차가 작성한 「국내 자동차산업 구조조정보고서」의 내용을 보도했다.

「기아자동차는 자산이 현대자동차의 78% 수준인데도 차입금은 현대차의 108%에 달하는 등 금융부담이 가중되고 있음. 자동차 이외 주력사업이 미약해 그룹차원의 지원여력이 없음. 경영권 분쟁 등 내부갈등이 심각함」

기아자동차는 성장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에 국가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성장 가능성이 크고 경영이 견실한 그룹을 중심으로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삼성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보고서는 작성자가 내부참고용으로 만든 것이며 그룹의 공식 문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삼성측의 변함없는 공식입장이었다. 기아측이 삼성자동차를 검찰에 고발하는 등 사태는 확산일로로 치달았다. 삼성보고서 파문은 「삼성­정부 합작음모론」의 설득력을 높여주며 기아측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은 것은 기아측이었다. 삼성측의 고의 유출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모 증권사 관계자의 말. 『삼성보고서 파문을 전후해 기아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는 루머가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교환에 회부되는 어음규모가 급격히 늘었다. 기아그룹처리를 전담했던 이호근 제일은행 상무의 회고. 『6월 중순이후부터는 기아가 자금을 막는 것을 확인하면 새벽 동이 트곤 하는 날이 계속되다보니 은행쪽이나 기아쪽이나 모두 파김치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7월14일 교환에 돌아온 어음이 4,000억원에 이르렀다. 류시열 행장은 채권은행장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음을 막지 못하면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지정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회장도 이날 마지막으로 제일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난 상태였다.

이날은 그러나 돌이켜보면 빚더미 위에 불안한 자동차왕국을 건설해온 기아, 부실기업의 도박에 맞장구를 쳐온 은행, 시장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외면한 정부, 여기에 비이성적으로 보일 만큼 자동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삼성까지 모두가 얻을 것이 없는 허망한 다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김준형 기자>

□기아사태 관련 주요일지

97년

1.25 한보그룹 부도

4.15 부도유예협약 탄생

4.23 계열사 기산 부도위기 넘김

5.21 「삼성보고서」 공개

7월초 청와대 대책회의

7.15 기아그룹 부도유예협약 적용

8. 4 3차 채권단회의­김선홍 회장 퇴진등 요구

9.22 기아자동차 등 4개사 화의신청

9.29 부도유예기간 종료

10.22 정부, 기아자동차 법정관리신청 발표

◎기아와 괴문서/삼성 ‘신수종사업계획’/재경원 내부보고서 등 한결같이 ‘3자인수’ 내용/고비마다 공개돼 파문

부도유예협약대상기업으로 지정된 지난해 7월15일부터 법정관리방침이 결정되기까지 약 100일동안 진행된 「기아사태」에는 고비고비마다 「괴문서」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5월21일 공개된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보고서」외에 이른바 「신수종 사업보고서」와 재경부 보고서 등이 그것이다.

8월22일 언론에 보도된 「신수종사업 추진현황 및 향후 계획」이라는 문건은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작성일자는 97년 3월4일로 명기돼 있다. 앞서 공개된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보고서」보다 작성시기는 오히려 1개월 빨랐다. 신수종사업보고서 역시 기아와 쌍용자동차의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전략적 인수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아자동차 인수분위기와 여론을 조성하고 정부와의 공고한 공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보다 앞서 8월4일에는 「기아사태의 처리방향과 정부입장」이라는 재경원 내부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됐다. 주요 내용은 기아자동차를 부도처리한 뒤 법정관리 및 3자인수를 추진한다는 것. 재경원은 실무자선에서 작성했다가 폐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밖에 산업은행과 금융연구원 보고서가 각각 9월11, 12일 연이어 언론에 공개됐다. 이들 보고서는 한결같이 기아자동차를 제3자가 인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성처의 부인과 해명에도 불구, 기아측은 이같은 보고서들이 김영삼 정부가 일관되게 기아를 삼성에 인수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