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思想 50년의 반성(金聖佑 에세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思想 50년의 반성(金聖佑 에세이)

입력
1998.08.15 00:00
0 0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으면서 그동안의 성과들이 여러모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놀라운 성취들이 많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났다고해서 모든 것이 다 발전하고 그 발전에 유공한 것은 아니다. 전혀 건국사에 기여하지 못한 분야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철학이자 사상이다.대한민국 50년을 움직여 온 인물을 꼽으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50년을 움직여 온 사상을 꼽으라면 그 중 단 한가지인들 무엇인가. 도서관이나 책방에는 구간 신간의 책들도 많건만 국가의 이성이나 국민의 정신을 불밝혀준 사상서적은 단 한권인들 무슨 제목인가. 이 땅에 철학자나 사상가가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묻고 싶다.

실로 정신없는 50년이었다. 급전의 역사를 바삐 뛰느라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러다보니 정신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다.

철학이나 사상은 한 나라, 한 사회의 원리의 제시요 가치에 대한 해답이요 방향을 위한 지시다. 사상이 없는 역사는 눈 먼 역사다. 사상은 역사를 해석하면서 역사를 인도한다. 건국50년은 기본적인 것이 결여된 채 용케 여기까지 왔다. 아무리 다른 수확이 크더라도 그것은 표류된 역사의 그물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사색할 줄 모르는 민족이 아니다. 개국이래의 우리의 철학사, 사상사는 조금도 남부끄럽지 않다. 호국이념이기도 했던 불교나 유교의 전통에 성리학을 대성시키고 실학을 창도했다. 동학사상에 이어 개화사상, 애국계몽사상이 민족을 이끌어왔다.

광복과 함께 남북이 분단되면서 우리의 사상사는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고만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 」로 삼으면서 반공 자체가 국가의 이념이자 주도사상처럼 되어버렸다. 그 속에서 조국근대화의 기치아래 산업화가 추진되고 민주화의 욕구가 분출되고 하는 사이 사회적 혼돈과 함께 가치관의 혼돈이 생겨났으나 이에 대한 철학적·사상적 성찰은 미미했다. 경제발전과 함께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졌으나 동시에 그만큼 인간적인 환경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민주발전과 함께 자유가 신장되었으나 그와 함께 모든 사회정의가 실현된 것은 아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정치적으로 상충해온 모순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이 모두 철학이 고뇌해야 할 과제였다.

지난 50년동안 우리에게 철학이 있었다면 그것은 물신주의(物神主義)일 것이다. 이것도 사상이라 한다면 이 사상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금전만능주의와 속물주의의 만연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기는 하지만 미국적 가치관의 영향이었고 그 가치관의 출처가 실용주의 철학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의 정신을 불교가, 조선시대의 생각을 유교가 지배했듯이 대한민국 50년의 생활방식은 프래그머티즘이 지배해왔다는 견해도 있다. 그 결과가 물신주의로 타락하여 우리 사회의 많은 병폐를 야기시켰다면 이에서 탈출하기 위한 사상적 노력을 한 것이 무엇인가. 철학이 정신 차렸으면 총체적 부실의 소산인 오늘의 경제파국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자유없이 사상은 없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곳에 사상은 자라지 않는다. 오랜 반민주적 정치환경 속에서 사상이 위축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의 사상들은 주눅이 들어버린 것인가.

사상의 불모는 토양 탓도 있다. 철학자의 목청이 크지 않은 땅에서는 철학이 왜소해진다. 사상가의 발언권이 어떤 정치가보다도 강할 때 나라는 뿌리가 깊어지고 사상은 열매가 많아진다.

「오늘날 철학교수는 있되 철학자는 없다」는 말이 전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철학자가 철학을 독점하는 시대도 지났다. 사상은 정치학, 경제학은 물론 자연과학, 사회학에까지 미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철학의 빈곤은 곧 지성의 빈곤이다. 그런대로 지난 50년동안은 철학의 역할을 시나 소설같은 문학이 이론적으로 정립되지는 않은채 대행해 온 듯한 느낌이 있다.

세계의 사상계는 지금 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에 의한 민주주의 외에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이것이 21세기의 큰 과제다. 우리가 이 21세기에 세계의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그저 거리의 구호로만 외쳐대지 말고 우리의 독자적인 중심생각을 새로운 사상으로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건국 50년의 정신이 공허했다면,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그 혼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정신을 가다듬어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갈 철학을 어떤 지도자의 창출보다 먼저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