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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항일무장 독립운동/김경천 선생 후손들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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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항일무장 독립운동/김경천 선생 후손들 한국에

입력
1998.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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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亞 거주 확인 건국 50돌 맞아 정부 초청전설적인 항일 무장독립운동가 김경천(金擎天·본명 김광서·金光瑞)선생의 후손들이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돼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13일 일시 귀국한다.

「백마를 탄 김일성」등 전설적인 영웅으로만 알려졌던 김선생은 95년 정부 포상대상에 올랐으나 후손들의 생존과 그후의 활동이 알려지지 않아 포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올 3월 모스크바에 교육파견중인 감사원의 정창영(鄭昌永) 감사관이 모스크바대학 교수로 근무중인 선생의 막내아들 기범(67·러시아 노브고로드 거주)씨의 사위를 만나면서 선생의 업적이 사실로 확인돼 이번에 건국훈장을 추서키로 했다.

일본 육사 기병과 출신인 그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만주로 망명한 뒤 한·러연합부대가 일본군을 섬멸한 니콜라예프스키항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이 러시아 백군(白軍)과 마적을 앞세워 대대적인 보복에 나서자 본격적인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시베리아 투쟁 당시 백마를 타고 「김경천 기병부대」를 지휘하면서 설원을 누벼 국내 사학계에한때 「원조 김일성」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1922년 독립운동단체들로 구성된 고려혁명군의 동부지역사령관을 지내다 일본군이 같은해 10월 시베리아 지역에서 철수하자 그때까지 혁명운동을 함께 하던 러시아 적군(赤軍)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했다.

김선생은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뒤 1939년 「인민의 적」이라는 혐의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하던 중 1942년 소련의 북동쪽의 한 유배지에서 심장질환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생은 그러나 스탈린 사망후인 59년 2월16일 사후복권됐다.<김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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