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주민 절반 5만명 밥지을 물도 없어/보은4개면 통신끊겨 피해집계 불가능서울·경기지방을 초토화한 집중호우가 이번에는 돌연 남하, 충북과 경북 북부지방을 단 하룻밤 사이에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12일 기록적인 폭우가 휩쓴 충북 보은지방과 경북 상주를 비롯한 낙동강 상류지역은 집과 도로, 전답 모두가 처참한 모습으로 황토빛 물바다 속에 잠겨버렸다.
▷상주◁
11일 오후부터 화남면에 532㎜등 평균 300㎜가 넘는 폭우가 강타한 상주시는 12일 날이 밝은뒤 산봉우리와 고지대 집 몇채만 섬처럼 모습을 드러내 마치 다도해를 방불케했다.
『빨리 구조 좀 해주이소』『사방이 물 천지라 빠져 나갈 길이 없습니다. 비는 자꾸 오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어쩝니까』 공검면 중소1리 오태못 주변 마을 등 고립된 18개 마을의 주민들은 애타게 재해대책본부에 구조를 요청하며 공포의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짙은 비안개를 뚫고 현장에 접근한 구조헬기들은 번번이 착륙을 포기한 채 돌아가야만 했다. 사방이 온통 물바다여서 헬기가 내려앉을만한 손바닥만한 땅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해대책본부는 『일단 높은 곳으로 대피하고 물이 어느 정도 빠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달라』고 주민들을 달랬다.
주민들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구조될 희망을 포기, 고지대 집에 함께 모여 초조하게 밤을 지새웠다. 밤이 깊어가면서 빗발이 가늘어져 그나마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 팔순 노인은 『평생 이렇게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은 처음 봤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주변 도로 태반이 유실돼 상주시내에서 육로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은 18개 읍·면 가운데 낙동면등 4∼5개면에 불과했다. 상주시가지도 외부와 통하는 6개 도로 가운데 대구 및 김천방면 2개만 소통돼 겨우 고립을 면하고 있다. 특히 화남면등은 통신마저 완전 두절돼 몇명이 고립돼 있는지, 몇명이 사망했는지 조차 외부에서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주위가 온통 물바다여도 취·정수장이 침수되는 바람에 정작 마실 물이 없어 상주시 급수인구의 절반가량인 5만여명이 밥 지을 물조차 구하지 못해 고통을 겪었다.
▷보은◁
『이번만은 피해가길 바랐는데…』
80년 읍 전역이 수몰되면서 100명이 희생되는 등 엄청난 아픔을 겪었던 보은군 보은읍 주민들은 새벽부터 마치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쏟아져 내린 집중호우에 과거의 악몽을 되살렸다.
보은읍을 가로지르는 보청천 지류인 항건천 제방 20여m가 붕괴되면서 보은읍 외곽지역인 죽전리 장신리 일대가 온통 물에 잠겼고 속리산을 잇는 이평교 인근 종곡천 제방이 유실돼 인근 이평, 월송리 지역은 어디가 농경지고 어디가 마을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새벽 4시께 인근 고지대로 긴급대피했다 날이 밝아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집으로 돌아온 보은읍 주민들은 마을을 완전히 수몰시킨 황톳물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가까스로 범람위기를 넘긴 보청천 제방위에 나와 제방 응급복구 작업을 지켜보던 이동섭(李東燮·68·보은읍 죽전리)씨는 『새벽 1시께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해 18년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게 아닌가 싶어 한 숨도 자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보청천 본류가 범람하지는 않았지만 소하천 곳곳의 제방이 터져 그 때나 지금이나 피해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집 안방이 1m이상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는 김명환(金明煥·35·보은읍 장신리)씨는 『80년 대수해때 붕괴됐던 이평교 부근 제방이 이번에도 똑같은 자리가 잘려나갔다』고 분개했다.
속리산이 있는 내속리면과 보청천 하류지역인 외속리면 마로면 탄부면등 4개 면은 전 지역이 물에 완전히 잠긴데다 통신수단마저 모두 끊겨 대략적인 피해집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보은·상주=한덕동·정광진 기자>보은·상주=한덕동·정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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