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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일기·신대한국…/광복절에 되새기는 ‘魂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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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일기·신대한국…/광복절에 되새기는 ‘魂과 노래’

입력
1998.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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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일기­‘臨政어머니’ 정정화의 항일투쟁/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항일·민족의 노래 450여곡 정리53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한 여성독립운동가의 자서전 「長江日記(장강일기)」와 독립의 염원과 항일의지를 담은 노래집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가 출간됐다. 「장강일기」는 사적 기록이지만 독립투사들의 국내잠입활동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담고 있으며 「신대한국…」은 해방이후 멸실위기에 놓인 항일·민족의 노래를 모은 책으로 이 분야에서는 희귀한 연구결과이다.

「장강일기」(학민사)는 상하이(上海)임시정부의 어머니로 불렸던 정정화(鄭靖和·91년 작고) 선생이 자신의 망명생활을 토대로 항일투쟁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1900년 서울서 태어난 정정화 선생은 11세 때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의 외아들 김의한(金毅漢)과 결혼,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21세가 되던 해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는 중책을 맡고 여러번 고국에 밀사로 파견된다. 비밀리에 중국과 고국을 넘나들며 20대의 꽃다운 나이를 넘긴 그는 그 후 김구(金九) 이동녕(李東寧) 선생 등 임정요인 뒷바라지와 망명정부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고통스런 망명생활 끝에 광복을 맞았을 때는 이미 50을 바라보는 나이. 그러나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이 발발해 남편은 납북되고 남한에 남은 그는 부역혐의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40여년. 그는 서울의 한 변두리에서 그토록 염원하던 통일을 보지 못한채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그는 증언을 통해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전해주고 있다. 그의 삶은 「아! 정정화」(민예극단)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13∼23일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소장 역사연구가인 이중연(李中淵)씨는 각종 노래집, 일제 정보문서, 독립운동가의 회고록, 신문, 기존 연구 등을 토대로 450여곡의 노래를 정리해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혜안)에 담았다.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지은 「이토(伊藤) 도살가」와 「독립군가」 「봉기가」 「광복가」 등 일제강점기 널리 애창됐던 노래 250곡에 대해서는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 등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착취받고 억압받는 배달민족아/ 항일의 전선에 달려나오라/ 다달았네 다달았네 우리나라의/ 독립의 활동시대 다달았네…」(1920년대 「항일전선가」중에서). 모든 동포가 일터에서 일어나 독립전선을 구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2절에 나오는 「노소도 소원대로 총동원하라」는 가사는 당시 임시정부를 비롯한 모든 독립운동단체가 채택한 국민개병제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책 말미에는 소논문 「근대 겨레의 노래사」와 「일제강점기 민족노래에 대한 일제의 탄압사례」를 수록했다.<김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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