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평범한 교통사고가 보험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경남 진해시 국도선상에서 중앙선 침범사고로 사망한 이모(당시 39세)씨가 생명, 손해보험사 등 18개 금융기관의 39개 보험상품에 무더기로 가입한 사실이 사건처리과정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모두 받게 될 경우 50억원대에 달해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국내 최고 액수였다.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사건 정황상 보험금지급을 노린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자신의 수입보다 훨씬 많은 보험에 중복가입하면서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것은 신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손해보험회사들은 약관상 타사 보험상품에 가입할 경우 기존 가입 보험사에 알리도록 돼있는 「고지(告知)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을 보험금을 노린 사기극이라고 단정,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반면 자살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처지에 놓인 생명보험사는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법원은 사건발생 1년여만인 지난달 이씨 유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 1심에서 유족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가 막대한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했다는 증거가 없는데다 매월 보험료가 본인의 수입보다 많았다고 해서 신의원칙이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판결요지였다. 아직 상급심 공방이 남아있지만 이 판결은 보험사가 중복가입에 대한 약관규제를 강화할 계기를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의사망」의 입증책임은 보험사에게 있는 만큼 과다한 중복가입이라도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이영태 기자>이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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