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선출에 패배한 한나라당의 후유증이 심각하다. 당 지도부가 사퇴하는 최악의 내홍에다 대여협상 중단 선언으로 강경 대치정국이 빚어지고 있다. 여야가 피차간에 모든 수단을 동원한 실력대결을 폈던 끝이라서 대야(大野)로서의 패배감이 더 깊은 것 같다.국회는 어렵사리 의장을 뽑아놓고 다시 마비상태로 빠져 들었다. 하루 빨리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 대치국면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는 것이다. 과반의석 분포를 무너뜨린 여권의 「실력」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고, 여권의 정국운영 기조도 짐작이 가능하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여권에 끌려갈 수는 없으면서도 여기에 정면으로 맞설 명분을 상실한 상태다.
의장선거에서 나타난 야당의 이탈표가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고는 하지만 여권은 이미 여러차례 자신감을 보여왔다. 한나라당의 충격이 큰 것을 보면 애초에 경선승리를 확신했던 것 같은데, 그만큼 내부단속과 자기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증거다. 일부 이탈이 있더라도 총리인준에 얽힌 여권의 교란을 노렸다면 큰 착각을 한 것으로 판명된 게 경선결과이다. 자유경선에 승복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아니더라도 한나라당 입장에서 경선을 「복기」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공작」을 문제삼고 있지만 그 효과는 소속의원들끼리의 내부충전에나 도움이 될 뿐이다. 여권이 개별 야당의원들을 상대로 여러 형태의 회유와 설득, 또는 이면에서 협박이 가해질 개연성은 항상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이 집권여당의 속성이었고 야당이 벌이는 표대결은 항상 그런 전제속에서 벌어져 왔다. 과거 야당이 그같은 불리한 싸움을 하면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명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대여 강경투쟁에 나서려 하겠지만 문제는 주장할 명분이 없다는데 있다. 이탈세력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마당이라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야당이 격앙된 감정과 무력감으로 표류한다면 정국 불안은 심각하다. 더구나 지도부가 사퇴한 후 비상체제로 운영될 것을 생각하면 우려가 더 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국경색의 해소 여부가 결국 한나라당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명분없는 싸움을 확전시키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명분없는 싸움은 또한번의 패배일 뿐이다. 국회일정을 당초 합의대로 이행하고, 줄 것은 과감히 주는 냉정한 처신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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