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北 누님과 편지 끊긴후 고향땅은 더욱 간절함으로10일까지 국제화랑에서 「향수」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갖고 있는 황용엽(黃用燁·67)씨는 실향민이다. 하지만 그는 올 가을 시작될 금강산 여행에 관심이 없다. 『실향민은 관광이 아니라 고향 땅을 보기를 바란다』는 설명이다.
평남 강서 출생으로 강서중고교를 졸업하고 평양미술학교 2학년이던 51년 1·4 후퇴 때 월남한 황씨는 서울에서 더 긴 세월을 보냈지만 고향을 잊지 못한다. 포탄 소리에 놀라 들쳐 업었던 아이를 내팽개치는 비정한 모성은 10대 소년의 감수성을 흔들어 놓을 만한 사건이었다. 『곧 돌아가겠지』하는 마음으로 월남한 지 올해로 47년째이다.
군복무를 마친 그는 미군부대에서 미군들 초상화나 핀업 걸을 그려주며 연명했다. 57년 고학으로 홍익대 미대를 마치고 화가로 이름도 얻었지만 그는 고향을, 형제를 잊을 수 없었다. 『그냥 잊을 수 없었다』는 그는 91년 미국에 건너가 북한에 살고 있는 3세 위 누님의 주소를 알아내 편지를 보냈다. 2년간 예닐곱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93년 북한이 갑자기 페쇄정책으로 선회하면서 편지가 뚝 끊기자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70년대 「휴먼」시리즈부터 그의 그림에는 고향을 잃은 자의 설움이 배어 있었지만 편지 왕래 이후 그리움은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됐다. 고향땅을 그리고, 중학생 시절 보았던 강서고분벽화 표면의 거친 표현을 그림에 도입했다. 95년 「옛 이야기」 「나의 이야기」 시리즈에서처럼 과거의 은유적 표현이 사라지고 구체적 풍경과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 것은 그리움이 그만큼 커지고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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