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50주년을 맞아 제2건국론이 무성하다. 민족국가 형성문제로부터 새로운 제도의 구축등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새로 세우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IMF시대에 맞은 건국 반세기는 국가의 장래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게 만들고, 나라를 일신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8월15일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제2건국선언문의 내용이 궁금하다.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나는 사람을 아끼고 키우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문제만으로 제2의 건국을 언급하고 싶다. 모든 개혁은 결국 사람의 몫이며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세력을 통해서만 그 일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원로가 부족하다. 노인들은 각 분야에 많지만 국가경영의 경륜을 갖춘 올곧은 원로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우리 현대사에 개인의 순일(純一)한 삶이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 만큼 평온한 시대가 없었고, 명리(名利)만을 좇는 삶의 방식이 일반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역대 정권의 인사행태가 사람을 키우기보다 망쳐 놓는 식이었던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기자상의 올해 편집부문 수상작은 97년 8월24일자 한국일보의 특집기획 「문민정부각료 114명 이 얼굴들을 다 아십니까」이다. 이 기사는 93년 2월 문민정부가 발족한 이후 기용됐던 장관들의 얼굴을 싣고 잦은 교체와 사람기용의 실패를 지적하고 있다. 나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잘못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국가의 중요한 인적 자원을 망쳐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밭에 들어가 앞으로 더 청청하게 자랄 수 있는 무를 서둘러 뽑아 대충 맛보고 남들이 먹지도 못하게 만든 격이라고나 할까. 인사의 요점은 이른바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쓰기 전에 의심해 보지 않고 쓰면서 의심하는 식의 인사행태는 많은 폐해를 남겼다. 학연과 지연, 친소관계에 의한 인사는 더 심해져 사람을 키우는 풍토의 정착을 방해했다. 정도차는 있지만 지금 정부도 비슷하다. 나라를 새로 세우려면 이런 점부터 고쳐야 한다.
두번째로는 원로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후진양성을 위한 노력과 공인의식 강화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가 대장성장관으로 기용됐다. 『지금은 나같은 노인이 나설 막(幕)이 아니다』라고 고사해온 그는 정계의 나이로 조카뻘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를 스스로 찾아가 간곡한 입각요청을 수락했다. 총리를 지냈던 인물로는 두번째 입각사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총리를 지낸 인물중 이런 제의를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겨우 각료급 경력이 있는 인사가 식당을 경영하거나 중학교교장이 되는 것이 화제가 될 정도이다. 총리를 지낸 인물이 수위가 될 수도 있고 자기 고장을 위해 기초의회의원으로 활동할 수도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이다.
마지막으로 차세대인사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소성(小成)에 만족하지 말고 공(功)을 서두르지 말고 자신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왕조시대의 선비같은 삼엄한 지조와 절도까지 요구할 수야 없겠지만 정권의 향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어떻게든 줄을 대려 하고 자신을 알리려는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 웃자란 인사들이 내실을 갖추지 못한채 떠다니는 모습은 차라리 가여울 뿐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처럼 유능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알려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용도폐기되는 시대에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말할지 몰라도 스스로 자신을 아껴야 남들도 아껴줄 것이 아닌가.
사람을 키우고 아끼는 일은 제2건국의 기초이자 완성일 수 있다. 건국 반세기가 이런 인식을 굳히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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