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내주면 인수은행 신탁부장들 다 갈아치울 거야』(금감위 관계자)『제일은행 봤죠? 돈 내줬다가 손해나면 누가 물어줍니까』(인수은행 간부)
퇴출은행의 실적배당신탁상품 예탁금 지급을 둘러싸고 금융감독위원회와 인수은행들간에 이같은 실랑이가 사흘간 벌어진 끝에 30일 지급이 시작됐다. 이날 인수은행 창구에서 예탁금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은 바빴다. 액수에 상관없이 원리금이 보장되는 구 예금자 보호법 시행령이 만료되는 31일 이전에 다른 상품으로 돈을 옮기기 위해서였다. 「시한」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가슴을 졸여온 고객들이 분통을 터뜨린 것은 당연하다.
사흘간 실랑이의 부산물이 고객들의 「불편」뿐은 아니다. 인수은행의 행장, 전무들까지 줄줄이 불러다가 「군밤」을 주고서도 결국 은행측의 요구대로 신탁자산 부족분을 보전해 준다는 문서를 내준 금감위는 감독기관의 권위에 상처를 입었다. 실적배당상품까지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기는 힘들다는 금감위의 입장은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면 자산부채 인수계약을 맺을 때 이를 명확히 제시했어야 했다. 「누르면 된다」는 구태를 되풀이하다 망신살만 뻗친 꼴이 됐다.
뒤늦게 계약내용을 문제삼아 지급을 거부한 인수은행들은 금전적 손실은 줄였지만 더 큰 것을 잃었다. 당초 퇴출은행 신탁상품 돈을 빼 내 인수은행의 다른 상품으로 옮기려 했다는 한 고객은 『은행이 손해날 지 모른다며 돈을 안내주는 모습을 보고,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은행은 아니구나 싶어 다른 은행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산부채 인수계약을 맺을 때는 문제점을 미처 몰랐을 것이라는 가정은 최고 엘리트들이라는 금감위나 인수은행 직원들의 능력과 성실성을 무시하는 실례일 것이다. 일단 사진이나 찍고 나중에 땜질하자는 식으로 인수계약을 맺다보니 당국 은행 고객 모두가 얻은 것 없는 네거티브 섬(SUM) 게임을 벌인 것이다. 절차가 부실하면 뒤탈이 생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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