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연기군에 있는 부랑인 수용시설 양지마을이 원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고발이 있은지 열흘이 넘도록 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억울하게 붙잡혀 가 갖은 고초를 겪다가 탈출한 원생이 양지마을의 인권유린상을 고발한 것은 지난 16일이었다. 고발이 있은 날 인권단체 사랑방과 집권당 국회의원이 현장조사를 통해 시설측의 갖가지 불법·탈법사실을 확인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당국은 즉각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지금까지 아무 조치가 없다.보건복지부는 『보도가 나간 다음날 직원 2명을 현지에 보내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상황이 복잡해 조사반원을 2명 늘려 지금도 조사중인데 아직 인권유린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복지시설이란 규율이 필요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규율이 필요한 곳이니 어느 정도의 제재는 불가피하다는 말로 들린다. 또 『관할 충남도가 진상조사를 했으나 인권유린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사기관도 마찬가지다. 충남도경은 17일 수사에 착수했다고 했으나 진전이 없다. 양지마을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천성원의 노재중(盧載重) 이사장을 한번 불러 조사한 일도 없이 말로만 수사중이다. 검찰도 경찰을 지휘해 조사중이라는 말 뿐이다.
29일 밤 MBC TV의 PD수첩이란 고발프로를 보면 충남도 간부들은 양지마을 편들기에 급급한 인상이었다. 부랑인을 수용시설에 넣으려면 시군구 또는 경찰의 의뢰를 받아 본인의사를 확인한 뒤 심사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양지마을 직원들은 역이나 터미널등에서 아무나 붙잡아 끌고 갔다고 한다. 화면에 등장한 파출소 경찰관도 이를 인정했고, 관할 시장도 심사를 한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인권위원회와 인권법을 만들어 세계에 부끄럽지 않은 인권국가를 지향한다는 나라에서 수용소 군도식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은 같은 사람이 11년만에 똑같은 사건을 일으켰고, 당국의 태도마저 그때와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천성원 이사장 노씨는 87년 「성지원사건」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연기군에서 부랑인수용시설을 운영하던 그는 원생 폭행치사 혐의가 폭로된 뒤 진상조사를 나온 신민당 의원들을 폭행해 물의를 일으켰었다. 노씨가 의원들을 맞고소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수사를 기피하자 의원들은 충남도지사실에서 농성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때 시중에는 노씨가 5공 권력층의 비호를 받는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8개의 복지시설을 거느린 「시설재벌」이 된 그의 배후에 지금은 누가 있기에 수사가 지연되는가라는 국민의 의혹을 빨리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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