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질긴 특수합금도 오랫동안 작은 힘을 받다 보면 마침내 파괴된다. 이 「금속 피로」가 때로는 대형 사고를 부른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전후 최악의 경제 침체를 두고 일본에서 「제도 피로」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의 「경제백서」까지 제도 피로를 지적하면서 근본적인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논의의 초점은 물론 「일본형 시스템」이다. 흔히 종신고용제와 연공임금제가 최대 특징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수직적인 금융구조, 즉 증권·보험회사는 은행의 우산 아래, 은행은 다시 대장성의 지도 아래 두어 온 구조가 보다 본질적인 특징이다. 도쿄(東京)대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교수는 95년 저서 「1940년 체제」에서 1940년에 완성된 전시경제체제가 「일본형 시스템」의 원형이라고 밝혔다. 전쟁 수행을 위한 총동원 체제는 전후 그대로 구미와의 「경제 전쟁」에 적용됐다. 이 체제를 주도한 혁신관료 집단은 사회주의 성향이 짙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세이케이(成蹊)대 다케우치 야스오(竹內靖雄) 교수의 최근 저서 「일본의 종말」에서 거론한 「일본식 사회주의의 종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주의적 특성이 진정한 자본주의로 대체되지 않는 한 일본 경제의 앞날은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왜 그런가?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씨가 제도 피로의 핵심 요인으로 지적하는 「관료집단의 부패와 무능」이 어느 정도 답이 된다.
「일본형 시스템」은 전시경제체제이든, 일본식 사회주의이든 시장 외적인 주도집단의 존재가 전제돼 있다. 그러나 어떤 훌륭한 집단도 영원한 효율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제·사회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눈먼 시장」만도 못해진다. 개인의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갖는 약점과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개발 독재」의 낡은 틀은 벗어난 것인가. 정경유착이라는 겉모습은 그럴 지 모르지만 「정치과잉」이라는 본질에서는 아직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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