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늘이 무너지면 무너진다/金鎭炫 서울시립대학교 총장(火曜世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면 무너진다/金鎭炫 서울시립대학교 총장(火曜世評)

입력
1998.07.28 00:00
0 0

우리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잘 쓴다. 그렇게 믿는 「실력자」들이 많다. 죽기전 김일성(金日成)이 외국사람에게 까지 이 말을 했다. 최근 뉴욕에서는 꽤 이름있는 모임에서 한국의 업계책임자가 이 말을 해서 공개적으로 논쟁이 됐었다고 한다. 탈속한 운명론같이 들리지만 냉정히 따지면 국정에 책임 있는 지도자들의 책임회피 발언이기도 하다.오늘 외환 금융위기의 핵심은 은행의 부실채권 부실금융이다. 이것은 한 두 해에 이루어진 거품이 아니라 60년대 경제개발이후 「하면 된다」「부채도 자산이다」라는 소신(사실은 거품이다)으로 밀어붙인 모래성의 모순이 금융으로 곪아터진 것이다. 지나고 보면 70년부터 시작하여 거의 5년마다 주기적으로 「부실기업정리」라는 빚잔치를 해왔다. 빚을 빚으로 갚으며 고도성장으로 「땜질」해오다 거품이 너무커 즉 부실금융이 너무 커 터져버린 것이 오늘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원천이다.

70년대 중반 금융제도개혁위원회에서 외국회계사의 도입 자유화와 의무화를 주장하다 코웃음을 받은 기억이 새롭다. 한국의 은행들을 관치금융 청와대금융에서 해방되고 전당포 영업에서 벗어나 대출 심사가 금융원칙대로 이루어지게 하려면 독립적인 외국회계사들로 은행과 기업의 장부를 투명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80년대 이후 관치금융 권력금융에다 재벌 인질금융이 돼버린 상태를 걱정하여 본격적 금융혁명과 재벌개혁을 논의하면서 가슴아팠던 일은 이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고 경륜 있다는 경제대가 마저 「걱정 마세요. 그간 어려움 많았지만 어찌 어찌 넘어 갑디다」라고 말을 받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하면 된다」는 말이 가속을 붙이고 이 나라 대표적 지성들까지 무당같은 「신바람」과 「국운론(國運論)」 개똥철학을 부추겨 일은 저지르고 봐야한다는 맹목에다 더 나아가 먼저 일 저지르는 자가 최고라는 배짱을 키웠다. 유죄판결을 받거나 감옥 갔다온 범죄인들도 시간 지나면 조야(朝野)간에 다시 청와대 드나드는 감투쓸 수 있다는 관행을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부끄럼을 잃고 염치를 잃었다. 원칙을 버리고 이성(理性)을 버렸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사회공동체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잃고 기초적인 원리를 버리고도, 잃고 버린 것조차 모르고 지낸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위기와 고통의 최고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들이 한자리 모인다는데 한마디 반성과 참회의 말도 반성과 참회의 행동도 없다. 관치금융 청와대금융의 「대리자」「하수인」인 은행간부들은 줄줄이 감옥을 가는데 그들에 명령한 정치권력과 관료 그리고 은행을 인질 삼았던 부실금융의 원죄인 정상(政商)적 부실재벌 중엔 참회는 커녕 큰 소리로 반격을 하는 영웅(?)들도 있다.

하늘이 무너지면 무너진다. 오늘의 외환위기를 진작부터 경고해온 스티브 마빈은 경고하고 있다. 「주식회사 한국은 5,000억 달러부채의 과중한 무게아래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고 은행위기가 임박했다. 월 68억달러의 이자지급이 이루어져야 하는 만큼 멈출 수 없는 관성의 힘이 시스템 전체를 파괴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 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의 결론이 옳으냐 그르냐보다 그가 제시하거나 비판한 일련의 숫자들, 기업부채 부실금융을 털기 위한 금융재구축 비용 재벌의 부채비율 축소계획들에 대하여 실효성 있는 토론이나 공론화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안팎으로 설득력 있는 금융과 기업 빚잔치계획이 책임있게 나오지 않는 한 이 위기는 끝내 하늘이 무너지는 파국으로 간다. 오늘은 무력증, 무책임, 권력에 대한 공포,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운명론, 하면 된다는 배짱까지 겹친 태풍전야의 고요 같다 할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