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절에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정치인들에게 「철새」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에 개인적으로 좀 불만이다. 생명의 숭엄한 명령에 따라 번식과 월동의 적지를 찾아다니는 철새들을 타락하고 오염된 정치인들과 비유하는 것은 「철새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6·4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당적으로 당선됐던 기초단체장들의「서식지」이동이 진행되고 있다. 여야는 이들의 당적이탈을 놓고 『야당파괴음모』니 『야당당적으로 시·군행정을 수행하는 한계때문』이니 하며 공방에만 열심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공방은 사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야당단체장들이 탈당해 여당에 입당하는 것은 굳이 말하자면 「월동」을 위해서다. 사정 한파를 피해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는 셈인 것이다. 선거철에 당적을 옮겨다니는 것은 정치생명의 재생, 즉「번식」을 위해서라고나 할까.
서울시의 한 구청장은 『매일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자칫하다가는 언제든지 교도소담장 안쪽으로 떨어질 수있는 신세라는 것이다. 선거운동과정에서 범한 「원죄」말고도 일상 직무수행과정에서 단체장들은 사법처리의 지뢰밭을 지나가야 한다. 모함과 투서는 아예 몸에 붙이고 산다. 「걸면 걸리는」 인허가건들도 수두룩하다.
일하고자하는 단체장들은 늘 사정(司正)의 사정권안에 들어가 있다. 이러니 사정기관이 한번 눈을 째리기만해도 단체장들은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고 야당당적의 단체장들의 체감한파는 한층 더 하다. 더구나 야당단체장들에게는 「이신행」처럼 방탄벽이 되어줄 「임시국회」도 없다.
야당단체장들이 따뜻한 남쪽나라로 긴급피난을 하는 것은 그같은 야당단체장하기의 고단함에서 벗어나보자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그 긴급피난은 권력의 야당파괴음모로 단정할 일도, 여당의 프리미엄이라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우리의 지방자치에 중대한 이상이 있다는 경고 시그널일 뿐이다. 처벌받을 단체장은 여당에 가도 처벌받고 소신있는 행정은 야당당적으로도 가능해야만 우리의 지방자치에 희망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