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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 문화 구조조정 경계를/李泰東 서강대 교수(한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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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 문화 구조조정 경계를/李泰東 서강대 교수(한국시론)

입력
1998.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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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기금 징수 중단 등 경제논리로만 접근땐 문화의 터전 상실할뿐”우리는 지금 미증유의 경제난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뼈아픈 자기 수술을 감행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수술을 한다 해도 위험한 질병의 원인과 환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로 끝날 뿐 아니라 상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진통의 원인은 부정부패와 손을 잡은 정경유착이나 비전없는 정치 등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위험스런 상황을 가져오게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필수적인 시민의식의 빈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국민의 문화적인 수준과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 혹자는 그것을 곧 문화 그 자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의 정신 및 감정교육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문화가 없으면 건강한 시민의식이 결코 잉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문화는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마 전 프랑스의 세계적인 문명평론가이자 경제학자인 기 소르망 박사가 『한국 위기의 본질은 단지 경제적인 것이 아니고, 세계에 내세울만한 한국적 이미지의 상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구국(救國)의 깃발 아래 행하고 있는 개혁작업의 과정에서 문화분야의 구조조정을 건실하게 하기보다는 완전히 해체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문화분야에 GNP의 1%를 배분하겠다던 자신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문예진흥기금의 모금마저 중단시키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98년 문화예산이 전체 예산의 0.65%에 불과한 실정에서 나머지 0.35%를 메워주는 공공재원으로 크게 기여해 온 진흥기금의 모금을 폐지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문화활동 지원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IMF한파로 인해 문화사업에 대한 기업체의 지원이 크게 위축된 상태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영화나 연극관람 등에서 모금된 적은 돈을 보다 큰 공익적인 문화사업에 투자하는 문예진흥기금의 활용은 문화분야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관람객들이 투자하는 작은 기금은 다른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의 경우와 같이 더욱 좋은 시설에서 보다 훌륭한 예술품을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립미술관과 국립극장등을 민영화하려는 계획은 얼핏 문화분야에 경쟁력있는 경영을 도입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경제메커니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화분야에는 적합지 않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공익사업에 속하는 문화공간을 민간에 위탁해 경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개발하는 자본주의의 장점은 처절한 노력을 통해 어느 한 쪽에서 벌어들인 것을 인간가치가 있는 다른 곳에서 값지게 사용하는 것이다.

현단계 문화분야의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예술을 상업주의예술로 만드는 구조조정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분야의 구조조정에 있어서 오랜 시간을 두고 문화진흥을 위해 축적해 온 지식과 노하우를 완전히 폐기 처분하는 근시안적 결정은 없어야 하겠다.

문화는 결코 화폐로 가늠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신비스런 힘을 가진 인간정신의 결정체이다. 문화를 경제논리로만 다루게 된다면 그것이 지닌 가치를 파괴하게 될 뿐 아니라, 문화의 터전을 완전히 상실하고 「원시적인 정글」로 되돌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뜻있는 문화인들이 문화에 조예가 깊은 김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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