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홍길동(洪吉童) 만큼 친숙한 이름도 드물 것이다. 도둑두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별 거부감이 없는 것은 그가 임꺽정이나 장길산처럼 좋은 일을 한 도둑이라는 인상 때문이다. 그러나 홍길동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산 허균(蛟山 許筠)이 쓴 홍길동전의 모델은 1500년 의금부에 잡힌 실존인물.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항문학 작품이고, 첫 한글소설로서 국문학사에 큰 획을 남겼다.■양반의 서자로 태어난 비범한 소년 홍길동이 암살을 모면하고 활빈당이란 도둑떼 두목이 되자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다. 임금이 회유하려고 병조판서의 지위를 부여하자 홍길동은 해외로 나가 요괴들을 물리치고 율도국(律島國)이란 나라를 세워 왕이 된다는 줄거리다. 신분사회의 병폐를 통렬히 고발하고, 폭력으로 기존질서에 저항해 인정을 받아낸 뒤 이상국가를 세우는 통쾌한 스토리는 억눌린 서민대중의 울분을 삭여주기에 충분했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의 문집에는 스승의 생애를 기록한 「손곡산인전」 등 전기류 5편이 전해온다. 이 것들은 모두가 실재했던 인물의 전기물이어서 소설로 보기는 어렵고, 한문으로 돼 있어 국문학적으로도 큰 가치가 없다. 그러나 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홍길동전은 문집에 싣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몰래 읽혔다. 개혁을 추구하다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그의 일생과 무관하지 않다.
■강릉시가 허균과 허난설헌(許蘭雪軒)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25일 홍길동 마스코트 선포식을 갖는다. 초립에 붉은 도포를 입고 칼을 찬 홍길동의 모습은 해수욕장 피서객들 앞에서 강릉의 심벌로 탄생해 강릉홍보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참여문학의 개조인 허균과 천재시인 허난설헌이 태어난 강릉시 초당동 생가터에 표지석을 세우고, 이 걸출한 오누이 문인의 기념관을 세우는 일이 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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