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전 축구국가대표감독과 그의 아내 오은미씨의 발언으로 축구계가 물끓듯 하고 있다. 오씨가 남편의 원고를 대신 집필한다는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한국대표팀 감독은 두 명」이라는 비아냥을 받쳐 줄 「증거」를 획득한 사람들은 차감독보다 그의 부인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미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 지난 해 1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한 후보의 부인에 이어 차감독의 부인은 앞으로 상당기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술자리에서 가장 친근한 안주감이 될지도 모른다.오씨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 그는 『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벨란제 앞에서는 무릎을 굽히고 인사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는 그 자신감에 공연히 반감이 생긴다. 그가 어떻게 대표팀 정책에 관여해왔는지 이러쿵 저러쿵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개운치 않다.
그렇다면 오씨가 어떻게 했으면 이런 비난에 휘말리지 않았을까. 선거때 「그림자 내조」라는 식으로 호평을 받는 후보자의 아내를 살펴보라. 『나는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남편 일이 잘 되도록 마음으로 빌고 있을 뿐이다』. 한국사회에선 모름지기 이렇게 답해야 한다. 여자가, 그것도 「마누라」가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했다간 표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게 뻔하다. 하지만 그처럼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부부가 어디 있을까. 아무 것도 모른다니.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의 사회적 활동을 꼬치꼬치 보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요즘 걱정거리는 무엇인지, 어떤 기쁜 일이 있었는지 그 정도쯤은 서로 알아야 하는 게 부부 아닌가. 하지만 아내는 언제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유리한 게 우리 풍토이다.
오씨의 행동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베갯밑 송사로 「섭정(攝政)」을 하려는 여성에게 혐오감이 드는 것은 보편정서이다. 다만 오씨를 반면교사로 삼아 「모르쇠」아내를 강요하는 그런 분위기만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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